Skip to content

Write

Long Story
2021.03.14 20:53

[팬픽]꼭두각시의 칼 19~22

Views 230 Votes 0 Comment 0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Larger Font Smaller Font Up Down Go comment Print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Larger Font Smaller Font Up Down Go comment Print
49.
 
 
 
"아오오..."
첫 번째 경기는 안나의 예상보다 훨씬 일찍 끝나 버렸다. 대기실로 돌아온 안나는 급격하게 분출된 흥분의 후유증으로 긴 의자에 드러누워 버렸다. 실신한 앨런 다포를 사람들이 데려와 들것으로 싣고 데려갔으며, 그가 있던 자리에는 세검 한 자루가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사회자에게 앨런의 세검을 가져가도 되겠냐고 묻자, 사회자는 일종의 전리품 성격으로 가져가려는 안나의 눈빛을 마음에 들어하며 선뜩 수락했다. 안나의 허리춤에는 새로운 목검, 그리고 새로운 세검 한 자루가 달랑거리며 매달려 날끝이 바닥에 맞닿아 있어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벽돌 바닥에 덜그럭거리며 소음을 냈다.
 
 
 
안나는 주먹을 맞은 볼을 어루만졌다. 멍이 들 것은 확실했지만 이빨이 모조리 날아가 틀니를 껴야 하지 않은 것에 다행으로 여긴 안나는 두 눈을 감았다. 조금 자고 싶었다. 다음 상대는 최악의 경우엔 창을 다루는 아렌델의 딜런 웨이크였다. 제 아무리 접근한다고 해도, 창의 공격 범위는 너무 넓었다. 도박을 걸어야 할 정도로 창은 안나에게 위협적이었다. 안나는 지긋이 천장에 매달린 전등을 응시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관자는 안나가 싸운 모습, 그리고 대기실에 나병에 걸린 시체처럼 드러누워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터였다.
 
 
 
'룬!'
 
 
방관자의 초점과 흰자가 없는 탁하고 검은 눈을 떠올리니 맥락을 타고 가방에 들어있던 룬이 불꽃처럼 안나의 기억에서 튀어올랐다.
 
 
'룬이라면 조금은 도움이 될 지도 몰라.'
 
 
방관자의 표식을 얻음으로써 발휘하게 된 점멸, 그리고 암흑 시야와 빙의는 현재까지 안나에게 톡톡이 도움을 주었다. 방관자는 룬을 모으고 교감을 하라고 일러 주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이 상황이 방관자가 말해준 자물쇠, 그리고 룬이 자물쇠를 해제할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안나는 헐레벌떡 일어나 대기실의 문에 설치된 걸쇠를 걸어 잠궜다. 그리고 열쇠구멍을 천 조각으로 대충 막은 다음, 가방에서 룬 두 개를 꺼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교감...교감...'
 
 
안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꿈에 존재하던 방관자의 성소에서 룬을 받아들였을 때처럼 룬에 손바닥을 대고 어루만졌다. 눈 앞에 펼쳐친 어둠 속에서 하얀 불꽃을 머금은 연기가 보이더니, 조금씩 커져 안나에게 다가왔다. 이내 뜨거운지 차가운지 모를, 간지러움에 가까운 촉감이 느껴지면서 안나의 무릎 위에 놓여졌던 두 개의 룬이 재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룬이 사라진 곳을 보면서, 안나는 대기실의 한쪽 구석으로 가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두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방관자에게서 표식을 받은 꿈 직후의 느낌과 거의 비슷했다. 앨런 다포와의 시합으로 축적된 피로가 상당히 누그러졌고, 욱씬거렸던 볼의 통증도 가라앉았다. 이번에 그의 룬이 선사해 준 능력은 체력에 관한 능력인 것 같았다.
 
 
 
안나는 다시 의자에 앉아 말짱해진 정신으로 대진표를 꺼내 펼쳐 보았다.  딜런 웨이크의 상대는 프랑시스카(8세기경 프랑크족이 사용하던 투척용 도끼)를 쓰는 티비아의 칼탄 출신의 맥스 디야코프였다. 차라리 공격 법위가 짧은 도끼가 안나에겐 상대하기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도끼가 어느 정도 둔기의 영역에도 포함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했다. 안나는 대진표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였다.
 
 
 
시합에 정신이 팔려 식사를 하지 못해 안나의 배에선 꼬르륵 신호가 흘렀다. 안나는 메가라에게서 받은, 여전히 냉기가 도는 그리스톨 탄산수와 린든에서 챙겨온 소시지를 가방에서 꺼내 입에 밀어 넣었다. 린든의 밖에서 거둔 첫 번째 승리 이후의 식사는 지금껏 안나가 겪은 식사들 중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소시지의 잡내 섞인 맛을 탄산수가 적절히 승화시켜 목 뒤로 넘겨주었다. 안나의 식사는 소시지를 꺼낸 지 2분도 지나지 않아 끝나고 말았다. 배가 불러진 안나는 열쇠 구멍에서 천조각을 회수했고, 걸쇠를 풀었다. 다행스럽게도, 안나가 벌인 일련의 부산스러운 소란을 눈치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50.
 
 
 
"찾았어...찾았어..."
 
 
엘사는 안나라는 소녀가 경기장에서 사라진 후 벌어진 다음 시합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아그나르의 칭찬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였던 소녀의 눈은 지금껏 마주해온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맑은 호수였으며, 햇살처럼 밝은 양갈래는 꼬아 올려 최대한 절제미를 끌어낸 자신의 창백한 백금발 머리보다 아름다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 안나라는 아이가 더 이기지 않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욕심을 스스로 피워냈다.
 
 
 
우승과 안나에게 불행이겠지만, 자신에게는 안나를 데려올 수 있는 공주라는 미미한 권력이 존재했다. 황실에서의 대우는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공주라는 신분으로 넉넉한 재정 지원이 이루어 졌으므로, 안나의 소원을 들어 주어 자신의 곁에 머물게 하고 싶었다. 망상이라도 괜찮았다. 그저 사람들을 경계하는데 도가 튼 그녀의 감각이, 이상하리만큼 안나라는 존재 앞에선 한없이 무뎌지는 것 같았다. 마치 드디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을 찾은 것 같았다. 엘사는 두 번째 시합이 창을 쓰던 딜런 웨이크의 승리로 끝날 때까지, 입을 꼭 다문 채로 안나의 모습을 마음 속에 새겨 넣었다.
 
 
 
 
 
 
51.
 
 
 
"어이, 안나 윈터! 곧 있으면 네 차례야."
 
 
안나에게서 사례금을 받은 접수원이 살구 파이가 담긴 접시를 대기실 문 밑으로 난 덧창으로 밀어넣으며 말했다.
 
 
 
"누가 이겼어요?"
 
 
안나가 살구 파이에서 품어져 나오는 내음을 흠흠 소리내며 맡으며 물었다.
 
 
"누구, 딜런 웨이크 조, 아니면 마크 보든?"
 
 
마크 보든은 1조의 안나와 앨런 다포, 2조의 딜런 웨이크를 이은 3조의 참가자 중 한 명이자, 안나가 염려하는 둔기를 쓰는 몰리의 프래포트 출신이었다. 창이라는 명확한 무기군을 쓰는 딜런에 비해 마크의 둔기는 무엇인지 예측이 가지 않았다.
 
 
"둘 다요."
 
 
"어디 보자... 2조는 딜런 웨이크가 이겼어. 3조는... 올리버 그림스데일. 4조는 로렌조 메이어. 알다시피 총검을 쓴다지?"
 
 
 
 
불행 반, 다행 반의 소식이었다. 올리버 그림스데일은 안나와 같은 검을 쓰기 때문이었다. 그나마도 안나의 추정에 따르면 그녀가 속했던 첫 번째 경기보다 두 번째 경기의 시간이 더 길었다. 마크 보든이 딜런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준 것이 분명했다. 앨런 다포에 이은 두 번째 패자에게 안나는 보이지 않는 감사를 표하며, 경비원이 준 살구 파이를 두 번 씹어 입에 욱여넣었다. 다람쥐처럼 입에서 꼭꼭 씹어 삼킨 안나는, 남은 탄산수를 텁텁해진 입에 훌훌 털어 넣었다. 허리춤에 매어진 목검과 세검을 확인한 안나는, 두어 번 심호흡을 하고 대기실의 철문을 열었다.
 
 
 
 
 
 
 
52.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다음은 1조의 안나 윈터, 그리고 2조의 딜런 웨이크의 시합이 있겠습니다. 모두 큰 박수와 함께 맞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 보았을 땐 막 예열을 끝낸 관중의 열기는, 안나의 차례가 되어서부터 녹을 듯이 후끈해져 있었다. 안나는 그들이 환호한 이유 중 하나가, 이 검술 대회에서 유일하게 자신만이 여성이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의 호기심이 지배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나, 이겨 버려!"
 
 
물론, 봉건 귀족의 관람석에 앉아 있는 친구 이상, 가족과도 같은, 제 3신분의 부르주아지인 메가라처럼 세속적인 모순 속에서 진심으로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었다.
 
 
"와, 저 사람들 좀 봐. 우리를 엄청 응원하고 있잖아."
 
 
사람들에게 손을 들며 환영에 답하는 딜런이 안나에게 넌지시 말했다.
 
 
"정신 사나워요. 정말로."
 
 
안나는 솔직하게 경기장의 인상을 생전 처음 보는 사내에게 털어놓았다. 그만큼 자신의 긴장이 풀어졌음을 반증했다. 안나는 입을 닫으면서 사내가 장비한 창에 시선을 흘렸다. 고아원에서 자주 보았던 옥스(Ox, 도끼 날 자체가 없는 파르티잔의 일종)가 그의 어깨에 짊어져 있었다. 안나는 그 누구도 의식하지 못할 만큼 미약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매티어스는 목적 때문인 것도 있지만, 유독 검술에 흥미를 보인 안나에게 여러 무기들의 파훼법을 꾸준히 알려주었고, 그 중에서 유독 창에 대비한 훈련을 안나에게 강조했다. 하물며 매티어스가 안나를 상대로 한 창이 딜런이 가지고 있는 옥스였으니, 안나가 이길 가능성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이전보다 커져 있었다.
 
 
"잘해 봅시다. 아, 그거 알아요?"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안나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띄워졌다.
 
 
"이미 우리가 처음 이긴 것을 시작으로, 우릴 눈여겨 보는 귀족들이 늘어났다는 것을요."
 
 
안나는 속으로 '글쎄요'라고 반문했다. 그의 눈에 비친 꾀죄죄한 여검사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뭐, 제 말이 맞다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양 선수! 잡담은 여기까지 하죠. 둘이서 운명의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잖습니까?"
 
 
사회자가 농담을 섞어가며 두 사람에게 각자의 자리로 가라고 손가락으로 지시했다. 안나는 제 1신분과 2신분의 관람석, 딜런은 제 3신분의 관람석을 등지고 섰다.
 
 
"안나 윈터 양, 그대가 이기길 바랄게요. 승리의 여신이 언제나 함께하기를."
 
 
"경박스럽지만 그 모습 또한 아름다울 수가 있습니까? 안나 윈터, 시합이 끝나면  우리 영지로 놀러오길 바래요. 내 영지는 그리스톨의..."
 
 
안나는 그것이 딜런이 말한 귀족들의 관심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의 말이 기분이 좋다기 보다는, 부끄러운 면이 더 강했다. 안나는 심호흡을 하며 귀족들의 추파를 마음 속에 묻어버렸고, 반대편에서 제 3신분의 열광을 몸으로 받아내는 딜런을 바라보았다. 그 또한 안나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막 분장을 마친 신참 광대처럼 억지로 웃음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53.
 
 
 
"게르다, 부탁이 있어요."
 
 
엘사는 경기에 몰입중인 아그나르와 한스의 눈을 피해 자리를 떴다. 안나가 대기중인 천막에서 나오기까지 말미의 시간이 남아있었고, 엘사는 여지껏 자신이 쌓아두고 넘지 못한 도덕의 벽을 넘기로 각오했다. 벽을 넘으려면 사다리가 필요했고, 사다리를 만들려면 나무 막대와 사이를 엮을 끈이 필요했다. 엘사는 게르다를 나무 막대로 생각했다. 곧 허버트와 이야기꽃을 나누던 게르다를 찾아낸 엘사는 곧바로 자신의 지갑에서 금화 열 닢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무슨 일이세요?"
 
 
게르다의 눈에 비친 엘사는 갑작스럽게 뛰어와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카이 다음으로 오랫동안 하녀로써 일해온 그녀는 황실의 가족관계가 썩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황제와 마녀의 불륜으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공주의 시중을 드는 일을 할 때부터, 게르다는 세간의 소문이 대부분 거짓임을 알아냈다. 그리고 엘사가 핍박과 멸시 속에서 자라난 불완전한 사람인 것도 체감했다.
 
 
 
직업 특성상 접하게 되는 귀족들은 허례허식으로 채워진 기품이 있었지만, 엘사에게는 그런 거품을 느낄 수 없었다. 소심하고, 자신을 두려워하며, 얼음과 마녀란 단어에 발작할 정도로 민감한 것을 빼면, 그녀는 훌륭한 여제가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그녀로써, 제국의 95%를 차지하는 제3신분의 쌓이디 쌓인 불만도 해결해 줄 수도 있지만, 그녀는 게르다라는 제3의 인물의 눈에 비친 나약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걸, 3조와 4조의 승자에게 전해 주고, 이 말도 같이 전해줘요."
 
 
 
각각 다섯 닢씩 나눠서 전해주면 되겠다고 생각한 게르다는 엘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무슨 이유에선지 엘사의 눈에는 한동안 없었던, 제왕학을 공부할 때를 제외했던 열정 비슷한 것이 일렁이고 있었다.
 
 
"혹시 다음에 안나랑 맞붙게 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달라고 전해주세요. 만약 이긴다면 추가로 금화를 더 주겠다고 말해주세요."
"이겨...달라고요?"
 
 
엘사는 자기가 들은 게 맞는지 물어보는 게르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나가 순위권에 든다면 아그나르 혹은 한스가 그녀를 눈 여겨 보아 수행원으로 데려갈 가능성이 매우 컸다. 물론 자신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겠지만, 아그나르와 한스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도 과분했다. 차라리 안나를 일찍이 순위권에서 떨어뜨려 관심을 줄인다면, 오히려 자신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다소 특이한 부탁에 미심쩍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게르다가 대기실이 있는 복도로 사라지자, 엘사는 긴장에 풀린 다리에 손을 짚고 벽에 기대어 섰다. 꽉 막힌 드레스는 막연한 초여름의 더위에 조금의 틈조차 허용하지 않아 답답했다. 엘사는 목줄처럼 매어진 호박석 브로치를 떼어냈다. 숨이 트이면서, 엘사는 자신이 안나에게 묘한 소유욕을 느끼고 있음을 알았고, 자신의 속마음을 스스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체감했다. 안나가 자신의 제안으로 더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깨닫자, 균형을 잡지 못하고 지지대가 없어진 기둥처럼 주저앉았을 때, 안나와 딜런의 시합 결과가 들리지 않는 두려움에 휩싸여 잔뜩 웅크린 그녀의 등 뒤에서 전해졌다.
 
 
 
 
 
 
54.
 
 
 
처음 공격을 시작한 쪽은 딜런이었다. 검을 쥔 안나의 오른 어깨를 노리고 들어온 옥스의 날을 안나는 허리를 기울이며 피함과 동시에, 안나는 그의 왼쪽 정강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딜런은 안나의 예상을 넘어 그대로 안나의 몸을 어깨로 밀쳤고, 정강이에 직격하려던 목검의 궤도는 크게 비틀어져 유효한 충격을 입히지 못했다. 넘어지려는 몸을 힘껏 웅크려 간신히 뒤로 굴러 일어난 안나는, 숨 돌릴 새도 없이 휘둘러지는 딜런의 옥스에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피할 수밖에 없었다. 때리려는 자와 피하려는 자가 명확해진 경기 속에서 가장 열광하는 쪽은 참가자들을 상대로 도박을 걸고 있는 제3신분이었다. 연신 그의 옥스를 피하면서, 안나는 욕설을 퍼붓고 있는 쪽이 자신에게 판돈을 건 사람들이라고 확신했다.
 
 
 
문득, 안나는 린든의 뒷골목에서 벌어지던 투견장 속 투견들에게 미안해졌다. 고아원의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매티어스의 가르침 하에 올곧게 자랐지만, 고아원 뒷뜰에 있는 사과나무 서리를 시작으로 크고 작은 일탈을 해왔던 안나는 딱 한 번 투견장에서 도박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 때 안나는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자신의 머리색과 똑같은 갈색 늑대개에게 전재산인 동전 열 닢을 판돈으로 걸었다. 결과적으로 그 날 안나는 동전 백 닢을 얻어가는 대박을 터뜨렸지만, 그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 날을 마치 인생의 마지막처럼, 불타는 듯이 싸운 이름모를 갈색 늑대개는 안나와 다른 어른들의 욕설을 들어가며 승리를 맛본 직후, 피를 토하며 죽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안나는 동전들을 주머니에 넣어 의원 할아버지 밑에서 의술을 공부하던 크리스토프에게 의사를 묻지도 않고 전해주었다. 그 때의 갈색 늑대개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한 안나는 어느새 등 뒤로 피할 공간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 안나는 다시금 검을 들어 복부로 들어오려는 그의 창을 옆으로 쳐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창은 안나를 찌르지 않았다. 되려 안나의 옆구리, 대회장 벽에 그의 창이 박혔고, 안나는 그 다음 있었던 수십 초의 일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박힌 창을 뽑아내면서 발생한 반동으로 그가 안나의 복부를 발로 찼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검으로 그의 발을 막아냈으나 상쇄되고도 남은 충격이 복부에 가해졌고, 안나가 앞으로 쓰러짐과 동시에 입에선 경기 전에 먹었던 살구 파이와 위액의 혼합물이 쏟아졌다.
 
 
"아! 안나 선수! 안나 선수우! 딜런의 발차기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저 상태에선 일어나기 힘들 텐데요! 내상이 심할 것으로 보입니다!"
예상 밖의 구토에 당황한 사회자가 딜런을 제지했고, 딜런 또한 자신이 너무 힘을 들였다는 것을 인정하듯 몸을 뒤로 물렀다.
 
 
"괜찮아요?"
 
 
 
딜런이 진심으로 걱정되는 듯 안나에게 물었지만, 안나의 귀엔 그의 말이 야유로 가득해진 함성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사회자가 안나에게 가까이 다가왔고, 안나는 사회자에게 더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사회자가 토사물을 밟지 않게 조심스럽게 안나에게 접근했다.
 
 
"안나 선수, 싸울 수 있겠어요? 지금이라도 포기해도 괜찮아요."
 
 
익살스럽지 않은, 점잖은 말이 안나를 향했다.
 
 
 
"...물...좀."
 
 
"물? 아! 혹시 여기 물 가지고 계신 분 있습니까?"
 
 
 
사회자가 고개를 들어 안나의 등 뒤, 그리고 위에서 지켜보는 봉건귀족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봉건귀족들은 침묵했다. 정확히 그 인파 속에서 오직 메가라만이 유일하게 어쩔 줄 몰라하며 옆에 앉은 터너, 그리고 그의 옆에 앉은 신사에게 물을 가지고 있지 않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물을 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닌, 가지고 온 물이 없어서 미안하다는 듯 메가라에게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낼 뿐이었다.
 
 
"여기, 여기 있소!"
 
 
다행스럽게도, 부르주아지 중 한 사람이 양철로 된 수통 하나를 사회자에게 던졌다. 메가라는 물통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눈으로 좇아 시합 이후 그 은인에게 감사를 표하려 했지만, 어디서 날아왔는지 미처 알아낼 수 없었다. 관람하는 봉건귀족의 수보다 부르주아지의 수가 월등히 많았다. 메가라는 하는 수 없이 무언의 인사를 부르주아지들에게 보내야만 했다. 날아오는 물통을 받아든 사회자가 안나에게 내밀자, 안나는 수통을 기울여 물을 입에 머금어 입안에 남은 구린내를 헹궈내 뱉은 뒤, 수통에 있는 물을 모두 마셨다.
 
 
 
 
룬의 영향이었을까, 상당한 고통을 동반해 생겨 멍해진 정신은 체감할 정도로 또렷해졌다. 고통도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줄어들었다. 안나가 검을 지팡이 삼아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켰고, 이내 관중은 그녀가 일어섰다는 사실에 환호를 보냈다.
 
 
"계속 할 수 있어요."
 
 
안나는 몸을 돌려 자신의 고통에 침묵한 봉건귀족들을 씁쓸하게 보고는, 부르주아지 쪽을 향해 수통을 들어보였다. 마치 그것이 메세지, 혹은 신호라도 된 것처럼 부르주아지 중 일부가 안나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사회자에게 수통을 맡긴 안나는 이내 뭄을 추스르고 딜런을 노려보았다. 정신이 돌아온 지금이 바로 기회였다. 딜런 또한 안나를 기다렸다는 듯 안나가 달려들기 직전까지 안나를 향해 창을 들고 있었다. 안나의 목을 향해 찔려지는 창을 안나는 미끄러지듯 창 밑으로 몸을 숙였다. 한껏 크게 벌어진 그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져 나간 안나는 몸을 일으켜 그의 뒤로 검을 내리치려 했지만, 창의 자루가 칼을 막아냈다.
 
 
 
안나는 그가 다른 반격을 하기 전에 남은 손으로 세검을 들어 그의 종아리를 찔렀다.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그의 자세가 무너졌고, 안나는 세검을 놓음과 동시에 양 손으로 검을 쥐어 다시 한 번 그의 등을 향해 내리쳤다. 그가 앞으로 쓰러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사회자는 헐레벌떡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딜런은 쓰러졌고, 안나는 서 있었다.
 
 
 
"딜런 선수, 딜런 선수? 괜찮습니까?"
 
 
 
사회자가 안나에게 했던 것처럼 딜런에게 상태를 물었다.
 
 
 
"괜찮습니...아."
 
 
일어서려 한 딜런은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안나의 세검이 종아리에게 유효타를 준 탓인지, 그는 엉거주춤 그 이상의 자세를 취하지 못했다.
 
 
"...안 괜찮군요. 포기하겠습니다."
 
 
이대로는 더 시합을 이어나가지 못한다고 생각한 그였는지, 그는 기권 의사를 내비쳤다.
 
 
"아! 딜런 선수, 기권! 기권했습니다. 이로써 안나 선수는 두 번째 승리를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안나는 바닥에 나뒹굴어진 세검을 집으며, 창자루를 지팡이 삼아 절뚝거리며 대회장을 먼저 떠나는 딜런의 등을 바라보았다. 시합은 이겼지만, 만약 이게 실전이었다면 안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린든에서 갱단들과 싸웠을 땐, 아무도 창을 들고 싸우지 않았다. 아무리 매티어스가 가르쳐 주었어도, 실전으로 경험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안나는 경험의 중요성을 다시금 체감했다.
 
 
"누구한테 배워야 하지..."
 
 
"방금 뭐라고 했죠? 안나 선수?"
 
 
 
안나가 무심코 중얼거린 말 한 마디를 사회자는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 안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55.
 
 
 
"이번엔 누가 이길 것 같더냐?"
 
 
서코노스산 포도주가 따라진 잔을 들고 그것의 색채를 눈으로 음미하던 아그나르가 한스에게 물었다. 통째로 양념해 구운 새끼 돼지는 궁전의 요리사들의 손을 거쳐 뼈가 발라졌고, 이내 아그나르, 한스, 엘사의 접시 위로 먹기 좋게 올려졌다. 한스는 몰리 산 사과주가 담긴 잔으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
 
 
"사군토에서 온... 안나가 이길 것 같습니다."
 
 
한스는 잠시 말을 끊고 칼로 돼지고기를 다시 썰어 입에 가져갔다.
 
 
"처음에 금방 나가 떨어질 것 같았는데 벌써 두 번이나 이겼으니... 사군토에 저런 인재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근위병 중에서도 사군토 출신은 없었는데."
 
 
한스의 말은 아그나르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모든 장병들의 출신을 알고 있기란 힘들지만, 빵이 특산물인 사군토의 특성상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있습니다. 3명."
 
 
한스의 말에 반박하듯, 엘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두 사람에게 꺼냈다. 직접적인 정치를 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에, 사소한 것부터 공부하기 시작한 엘사였고, 자신의 영지를 포함해 20개의 영지에서 근무하는 경비대의 머릿수와 가족수까지 헤아리게 되었다. 한스의 얼굴에서 찰나의 불쾌함이 스쳤다. 아그나르는 의외라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들고 엘사를 바라봤다. 엘사는 아그나르와 눈을 마주하기 무서워 구석으로 시선을 좇았다.
 
 
 
"은퇴한 첩보대장과 근위병으로 근무중인 하몬 3급 지휘관, 그리고..."
 
 
"거기까지. 우린 네 쓸데없는 암기력 보려고 온 게 아니다."
 
 
아그나르가 손을 들자, 엘사는 어깨를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자신이 이어간 말을 끊는 신호라는 것을 알고 잔에 들어 물을 마셨다. 그마저도 수은을 마신 것처럼 불안하고, 무서웠다. 상아로 세공되었고 금과 은으로 수놓어진 의자는 장미덩굴로 엮어 만든 것처럼 그녀의 마음을 옥죄었다.
 
 
 
 
"네 의견을 듣고 싶구나. 말해 보겠니?"
 
 
갑작스레 풀어진 아그나르의 말에, 엘사는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사적인 공간이 아닌 공적인 공간 속에서 이번만큼은 그녀에게 아무도 비웃음을 짓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엘사는 옆에서 시중을 드는 아그나르의 시녀에게 잔을 내밀었다. 시녀는 정중히 몸을 굽히며 흰 도자기 주전자를 기울여 그녀에게 깨끗한 물을 따라 주었다.
 
 
"로렌조 메이어가 우승할 것 같다고....생각을...합니다."
 
 
 
 
"이유는?"
 
 
 
아그나르가 고기를 썰며 물었고, 한스가 의외라는 듯 그녀에게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졌다.
 
 
"확신하지 않으나, 총검을 쓴다는 것은 곧 군에 복무해 있던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다른 참가자들보다 실전 경험, 그리고 훈련 경험이 다분히 많은 자로써 우승을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하옵니다."
 
 
 
그리고 엘사의 계획대로라면, 사전에 익명의 뇌물을 건네 줌으로써 그들에겐 부차적인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이라고 판명했다. 엘사는 안나에 대한 걱정을 한층 덜고 있었다. 경기는 보지 못했지만, 안나와 딜런의 시합을 지켜본 시녀 중 한명이 그녀에 대한 두려움을 띈 채로 더듬거리며 시합의 내용을 설명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시합에서도 부상을 입었으나 언제 다쳤냐는 듯 다시금 일어선 안나였다. 남은 두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싸워도 안나는 버텨내겠지만, 맷집과 체력은 별개의 것이기에, 체력이 고갈되어 쓰러질 것 이 분명했다.
 
공주의 비뚤어진 소심한 욕심으로 도출한 예상은 결승에 진출한 안나와 로렌조 메이어와의 시합에서 결과가 드러났다.
 
 
 
 
 
 
 
56.
 
 
 
"위험한데..."
 
 
안나는 새롭게 교감한 룬의 능력을 톡톡히 쓰고 있었다. 평소라면 쓰러져 기절했을 그런 부상들은 저절로 나아졌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 부상은 나아졌어도, 피로는 가시지 않았다. 가까스로 나무 철퇴를 양손에 든 마크 보든을 상대로 어깨가 나가는 부상을 입었지만, 충격으로 돌아가는 몸을 회전축 삼아 보든의 턱에 발을 직격시켜 뇌진탕을 일으켜 쓰러뜨렸다. 사회자가 안나의 승리를 알린 직후, 안나는 그의  도움을 통해 관절에서 튀어나간 어깨뼈를 다시 맞추었다. 마지 능력에 중독이 된 것 같은 희열과, 조금씩 수평을 잃어가는 양 어깨를 짓누르는 피로는 눈 앞의 상대방을 향한 집중을 흐트러놓았다.
 
 
 
딜런에게서 한 번 가격당한 복부가 짜낸 토사물은 그 누구도 뚫지 못할거라 생각했던 대회장의 나무 벽들을 뚫고 들어온 몇 마리의 쥐들이 훔쳐 달아나 배를 채웠다. 정작 안나는 정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첫 시합에서 주먹으로 얼굴을 세게 맞았고, 두 번째 시합에선 복부를 발로 차였을 뿐더러, 세 번째 시합에선 철퇴로 인해 어깨뼈가 탈골하는 과정을 거쳤다. 배가 고팠고, 쉬고 싶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안나는 마지막 상대와의 싸움에서 우승을 하든, 준우승을 거둘 예정이었다.
 
 
 
'조금만 더 참자.'
 
 
 
안나는 로렌조 메이어라는 사내가 든 총과 그의 총구에 장착된 단검같은 총검을 노려보았다. 매티어스가 이따금 안나에게 보여준, 비오는 그 날에서 안나를 구해준 소총과 비슷했다. 호두나무로 이루어진 총몸은 윤기를 잃었고, 상처를 얻었다. 그것이 안나에겐 음의 요소였다. 많이 사용했을 것이고, 헝클어진 장발과 덥수룩핫 수염 속에 감춰진 사내의 인생을 얇은 총 한자루가 대변했다. 숙련된 군인, 아니면 노련한 사냥꾼일 터였다. 안나는 가볍게 싸움에 임하기로 했다. 결승에 올라온 순간 황실의 수행원이 되는 건 황제가 단언했으며, 그 결과를 번복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다만 자발적인 기권은 하지 말아야 했다. 기권은 순위에 상관없이 경기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이고, 황제의 약속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린든의 3, 4신분인 안나도 알고 있었다.
 
 
 
"양 선수 제 자리!"
 
 
안나가 검을 고쳐 쥐고, 로렌조가 찌를듯이 총을 움켜쥐었다. 안나는 로렌조의 눈이 아닌 총에 집중했다.
 
 
 
"시작!"
 
 
사회자가 경기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로렌조의 빠른 발걸음이 인파 속에서 두드러졌다. 안나는 제자리에 서서 총검을 받아쳐낼 준비를 했다. 그가 복부를 향해 총을 내지르려 하자, 안나가 칼자루로 총검을 내려쳤다. 총이 기울어졌고, 안나는 총검에 발이 찍히지 않으려 발을 뒤로 뺐다. 하지만 사내는 물러서지 않고 고꾸라지려는 총의 개머리판으로 안나의 코를 후려쳤다. 뜻밖의 공격에 안나의 눈앞이 순간 캄캄해졌다. 대성통곡을 하기 직전에 찾아오는 코끝의 시큰함에 고통이 져려왔다. 안나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한 번 굴렀고, 직후 안나의 코끝에서 한 줄기의 바람이 가로로 지나갔다.
 
 
 
눈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로렌조가 한 차례 공격을 시도한 것이었다. 안나는 어둠 속에서 조금 밝아진 시야를 통해 정확히 눈을 찌르려는 그의 총검에 섬뜩함을 느끼며 그의 정강이를 찼다. 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아 겨우 사내를 두 걸음 물러서게 할 뿐이었다. 어느 정도 부상을 감내해야 하는 시합이지만, 로렌조는 안나가 마주한 여느 참가자들보다도 진심으로 안나를 죽이려 드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고 있는 두려움? 그의 눈에는 이 두가지가 없었다. 기쁨과 흥분 비슷한 것이 그의 눈에 탁한 안개를 이루었다.
 
 
 
'청부라도 받았나 보다.'
 
 
 
 
안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여전히 욕설과 상스러운 칭찬을 던져대는 제3신분에 힐끔 시선을 흘렸다. 메가라를 제외하고 자신에게 물 한병 주지 않은 귀족들도 싫었고, 추측이지만 청부를 건 제3신분 사람들도 싫었다. 안나는 투견들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말을 못하는 네 발의 짐승의 눈에는 자신의 편, 남의 편이든 다 똑같을 뿐이었다. 안나의 생각을 자르듯 그가 몸을 비틀며 개머리판을 목으로 휘둘렀다. 안나는 칼자루로 그의 개머리판에 맞섰다. 싸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로렌조가 총구로 안나의 뺨을 후려쳤고, 안나는 주먹을 그의 후두에 내질렀다. 두 사람은 동시에 나가 떨어지며 뺨과 목을 어루만졌다. 안나는 피가 섞인 가래침을 퉤 뱉었고, 로렌조는 기침을 하며 침을 흘렸다.
 
 
"아! 두 사람 모두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시합에 도박이 걸렸다면 정말로 결과가 흥미진진할 겁니다! 한탕 크게 챙겨가거나, 알거지가 되거나 말이죠!"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엔 안나가 그에게 먼저 칼을 휘둘렀다. 간신히 총검으로 받아냈지만 마찰로 인해 나무가 익는 냄새가 순간 둘 사이로 퍼졌다.
 
 
"이쯤해서 포기할 건데."
 
 
거리가 가까워진 지금, 안나는 쇼를 충분히 했다고 판단해 로렌조에게 말했다.
 
 
"아니, 네가 쓰러지는 걸 봐야 해."
 
 
"일부러 쓰러지면 되잖아."
 
 
 
"여기 눈이 모두 썩은 동태눈깔인줄 알아?"
 
 
로렌조가 안나의 정강이를 발로 차면서 총몸으로 칼을 쳐냈다. 안나는 손에서 떨어진 검을 줍지 않고 바로 세검을 꺼내들었다. 총검의 끝이 세검의 날에 빗나갔고, 세검의 끝은 총검의 날에 막혔다.
 
 
"정신 똑바로 차려, 장난치면 왕한테 죽는다."
 
 
로렌조의 눈에는 어느 순간 안나를 향한 게 아닌,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향한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안나가 채 질문을 던지기 전에, 로렌조는 다시 공격을 이어갔다. 이번 공격은 정면으로 찌르려는, 창과 비슷한 공격이었다. 총검이 배에 닿기 직전 세검을 내리쳐 궤도를 비튼 안나는 다시 한 번 주먹을 로렌조의 목을 향해 가격했다. 두 번의 똑같은 공격을 로렌조는 당해내지 못해 쓰러졌다. 안나는 뜻하지 않게 흘러가는 상황에 편승해 버리고 말았다. 목을 움켜 잡고 쓰러진 로렌조의 어깨를 발로 차 쓰러뜨린 후, 안나는 사회자를 향해 돌아보았다.
 
 
"아, 아! 안나 선수! 두 번의 정권 찌르기로 로렌조를 쓰러뜨렸습니다. 로렌조 선수! 아! 거품을 물고 쓰러졌습니다."
 
 
사회자가 들것을 들고 대기하던 일꾼들에게 손짓했고, 일꾼들은 허둥지둥 거품을 물고 쓰러진 로렌조를 들것에 싣고 대회장을 빠져나갔다. 장 내에 무기를 든 사람은 안나 뿐이었다.
 
 
"이로써 승자느으은! 사군토의 안나 윈터입니다. 안나 윈터! 이 이름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부우우운!"
 
 
 
사회자가 안나의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왼쪽엔 고고한 박수가, 오른쪽에는 분노와 환호의 고성이 터져나왔다. 안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복받치는 감정을 제어하기 힘들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것과, 시궁창 같았던 린든에서의 삶을 청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안나는 생각했다. 매티어스와 크리스토프, 한나, 그리고 벨이 자신의 경기를 보아 왔더라면 얼마나 좋아할지를.
 
 
 
 
감정이 차차 누그러지자, 귀족 석에서 안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메가라가 보였다. 안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한 번 들어보였다. 잠시 뒤, 모든 소음이 가라앉았다. 안나가 뒤를 돌아보자, 처음 연설을 했던 아그나르 황제, 그리고 뒤에 서 있던 한스 왕자가 있었다. 안나는 두 모습을 보면서, '엘사'라는 존재 자체가 허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귀족도 아닌 황가의 사람들이면, 적어도 대외 활동을 위해 얼굴을 비추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군중이 받아들이는 당연한 심리라고 생각했다.
 
 
 
'욕받이 일지도 모르겠네.'
 
 
 
린든의 상황은 언제나 최악이었지만, 린든 바깥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는 소문을 광장으로 오면서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어 알아냈다. 이전부터 부담스러웠던 세금은 역병이 창궐한 이후 고혈을 짜는 듯이 치솟아 올랐으며, 귀족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나날이 치솟아 오르고 있다는 소문이 그것이었다. 주시자들은 혹시 모를 소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제국 곳곳의 특정한 곳에 첩자를 파견해 조사중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그 분노의 끝은 황실을 향해 있었다. 황실은 그 비판의 충격을 상쇄시키려고 가공의 인물을 만들었을 것이었다. 싹튼 감자는 싹을 잘라내면 안전한 것처럼, 독이 든 싹을 잘라내 황실의 안전을 보장할 터였다. 안나는 얼굴도 모르는 엘사라는 유령을 머릿속에서 지운 다음, 승자에게 주어지는 런들 대거와 상금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선사하려는 아그나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름이, 안나 윈터라고 하였나?"
 
 
아그나르가 인자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폐하."
 
 
안나는 떨리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히며 말했다.
 
 
 
"내 너의 검술 실력을 높이 사도록 하지. 자, 이제부터 자넨 우리 기사단의 일원으로써, 부강한 대국을 만들기 위해 부쩍 힘을 써야 할 것이야."
 
 
 
아그나르가 안나가 위로 내민 두 손 위로 사브레를 선사하며 말했다. 안나는 고개를 들어 런들 대거를 확인했다.  날이 잔뜩 벼려 있는 런들 대거의 손잡이엔 아렌델을 상징하는 튤립 문양이 선명히 각인되어 있었다.
 
 
 
"앞으로 그 검을 잊지 말게. 우리 일원임을 나타내는 물건 중 하나일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또 하나."
 
 
 
아그나르가 안나의 약지 손가락에 반지를 직접 끼워주었다.
 
 
"여, 영광입니다!"
 
 
 
안나가 더듬거리며 외치자, 아그나르와 한스가 넉살 좋게 웃었다. 안나는 생각했다. 기사단의 일원으로써 해야 할일이 칼질밖에 더 있겠냐마는, 적어도 이런 사람들이 명령을 내린다면 기꺼이 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윽고 반지가 안나의 눈에 들어왔다. 붉은 십자가와 꽃을 합친 듯한 문양이 박혀 있었다. 안나는 반지의 외양이 썩 마음에 들었다. 반지의 수여식이 끝나고, 안나는 런들 대거를 허리춤에 채웠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묵직한 상금 주머니가 놓여졌다. 순간 몸을 기울일 뻔한 안나는, 동화로 채워져도 상당한 금액이라고 확신했다.
 
 
"그래, 그 돈으로 무엇을..."
 
 
주머니의 용도를 물으려는 아그나르는 갑자기 말문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부터 조금씩 제3신분의 관람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조금의 소란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소란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폐하, 폐하아아!"
 
 
처절하고, 쉰 목소리가 아그나르를 향했다. 안나가 관람석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인파를 뚫고 대회장에 난입하려는 꾀죄죄한 여성이 있었다. 그런 그녀를 주시자들, 그리고 근위병들이 제지했다. 하지만 제지할수록 그녀의 비명은 공기를 찢어대고 있었다.
 
 
"이리 오라고 전해라."
 
 
황제가 뒤에 있는 한스에게 말하자, 한스가 근위병들을 향해 손짓했다. 근위병은 그녀를 묶었던 포박을 풀고는 대회장 앞으로, 안나의 옆으로 그녀를 질질 끌고 왔다. 주시자들은 예상치 못한 황제와 근위병들의 태도에 어이가 없어하며 어깨를 으쓱였지만, 그들이 착용한 가면은 되려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리 슬피 울고 있느냐."
 
 
아그나르가 자비롭게 물었다.
 
 
"저, 저는 티비아의 파라딤에서 온 소트니코바라고 하옵니다. 폐하, 제국에 역병이 치닫기 이전부터, 저흰 세금 때문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해 농사를 짓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설령 농사를 짓지 못하는 티비아에서는 사냥을 하면 영주에게 모피 전체를, 황실에겐 고기 전체를 바쳐야 하니, 저희 아이들은 무얼 먹어야 한답니까!"
 
 
 
소트니코바는 악에 받쳐 황제에게 직언했다. 안나는 그녀의 용감함에 경의를 표하면서, 한 발자국 옆으로 움직였다. 그녀에게선 티비아에서 아렌델까지의 여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냄새가 반증했다. 썩은 고기, 과일, 그리고 씻지 않아 피어오르는 오물의 냄새가 뒤엉켜 있었다. 린든의 냄새보다도 더 심하다고 안나는 그녀의 냄새를 평가했다.
 
 
 
"제발, 세금을 조금만 낮추어 주시옵소서. 저희 가족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챙길 여유를 주시옵소서..."
 
 
 
두 손을 빌며 소트니코바가 외쳤다. 안나가 잠시 눈을 돌렸을 때, 아그나르와 한스의 입가에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안나....윈터 양. 아니, 안나 윈터 대원?"
 
 
 
"네, 네, 네?...네!"
 
 
 
안나는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말하는 아그나르에게 말을 더듬었다.
 
 
"내가 악덕한 폭군으로 보이나?"
 
 
"네?"
 
 
 
"국가를 운영하려면 세금이 필요하지. 그리고 저 귀족들을 보게. 나라를 위해  요직을 맡고 있거나, 해외에서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일세. 저 사람들을 통해 국가의 위상이 좌우되는 법이지. 그리고 그 위상은 곧 힘으로 이어지지. 힘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아그나르의 말은 정설이었고, 안나에게 정설을 유도하고 있었다. 안나는 아직 풀지 않은 상금 주머니를 의식했다.
 
 
"세금...이라고...생각합니다."
 
 
"그렇지, 세금. 세금이 있어야 나라가 돌아가는 법이지. 난 우리 제국의회가 올바른 세율을 정하고, 그에 따라 올바른 징수 절차를 거쳤다고 보고 있네. 하지만..."
 
 
 
아그나르가 안나의 허리에서 런들 대거를 뽑아냈다.
 
 
 
"국가를 위해 쓰면 당연하고, 애국이라는 것을 이 자는 모르고 있지 않은가. 이거야 원, 부끄럽군. 이런 자가 제국의 시민이라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워!"
 
 
 
아그나르는 금방이라도 대거를 소트니코바에 찌르려고 손잡이를 굳게 쥐고 있었다. 안나는 제 3신분의 관람석에 눈을 돌렸다. 안나의 예상대로, 그곳에는 세금에 민감한 자들의 소요가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부르주아지들 또한 세금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같은 3신분의 시민만큼은 아니어도 높은 세율에 대해 불만을 궁시렁 궁시렁 털어내고 있었다.
 
 
 
"안나, 만약 자네라면, 어떻게 할 건가?"
 
 
 
아그나르가 안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안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금을 징수하는 자? 아니면 세금을 징수당하는 자? 아니면 황제? 순식간에 돌아가는 상황에 안나의 생각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네?"
 
 
"자네가 나라면 어떻게 할 건가 물었네."
 
 
 
 
안나는 그제서야 그의 질문을 이해했다. 대거를 들고 있는 아그나르, 그 앞에는 세금을 낮춰달라 비는 소시민, 그것은 안나에게 죽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가리는 단면적인 질문이었다.
 
 
'잘못 말하면 모든 게 날아가겠지...'
 
 
안나는 소트니코바를 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를 보고서는,  안나의 양심이 그녀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어서 대답하게."
 
 
 
아그나르는 잔뜩 화가 치밀어 오른 모양이었다. 안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신에게도 분노가 적용된다는 것으로 생각했다. 안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이 찔끔 흘러나와 광대뼈 부분까지 흘렀다. 그리고 안나는 황제에게 말했다.
 
 
 
"저라면..."
 
 
 
 
 
 
 
 
57.
 
 
 
 
'안 돼, 안 돼...'
 
 
엘사는 안나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조바심을 느꼈다. 엘사의 계획은 이러했다. 안나가 세 번째 경기부터 뇌물을 먹은 상대방에게 진 다음, 자신의 호국경으로 간택할 예정이었지만, 안나의 실력은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웃돌았다. 부상을 입어도 금방 털고 일어나는, 마치 방관자의 흑마법을 쓰는 것 같이 안나는 다시 싸움에 임했다. 엘사는 손에 맺힌 식은 땀을 꼭 쥐며 마지막 경기도 지켜보았다. 식은 땀은 불안에 섞여 얼음으로 고체화되었지만, 엘사는 장갑을 끼고 있어 개의치 않았다. 눈 앞에 있는 저 아이를 잡고 싶었다. 저 아이가 자신을 보아주지 않을 지라도, 자신은 저 아이를 곁에 두고 싶었다.
그리고 안나가 주먹으로 로렌조를 때려 눕혔을 때, 다른 이들은 환호를 질렀지만, 엘사는 모든 것이 무너진 심정 속에 소리죽여 비명을 질렀다.
 
 
 
 
 
 
 
 
 
58.
 
 
"진짜 너 답다. 너 다워!"
 
 
 
메가라는 축제가 끝난 직후, 자신을 따라오려는 귀족들을 뿌리치고 안나를 커보울의 외진 선술집 '사냥개 구덩이'로 데려갔다. 몰리 산 사과주 두 병을 주문한 메가라는 안나에게 병 하나를 밀었다.
 
 
"마셔! 너 오늘 엄청 잘 한 거야."
 
 
안나는 멍하니 창문 밖 거리를 순찰하는 경비대,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 설치된 빛의 장벽을 응시했다. 쥐 무리가 빛의 장벽을 지나다 벽에서 방출된 고압의 전기에 맞아 뼈까지 사라진 것을 본 안나는, 자신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고뇌에 빠졌다.
 
 
'저는... 죽이지 않을 겁니다.'
 
 
절대 선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린든에서 자란 안나가 린든 밖의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린든이라는 닫힌 세상에서 나와 보게 된 바깥 세상은, 분노와 욕설로 미어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그 상황 중 하나가 바로, 안나의 부정을 듣고 소트니코바의 목에 런들 대거를 찔렀다. 검붉은 피를 흘리며 도미노의 끝돌처럼 저항 없이 쓰러진 소트니코바가 장정들에게 들것 없이 손발이 잡힌채로 끌려나갔다. 그녀가 끌려간 자리엔 긴 핏자국이 번질거리며 남아있었다.
 
 
'일원이 되려면... 이런 것은 자주 볼 텐데, 자넨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이상적이군. 우리에게 맞는 사람이 아니야.'
 
 
그렇게 아그나르의 말을 끝으로 안나는 그에게 상금을 제외한 사브레와 반지를 회수당하고, 쫓겨나듯이 대회장을 빠져나갈수밖에 없었다. 대회장을 나서자, 대리석으로 이뤄진 광장의 가장자리가 나왔다. 서쪽으로 기울어진 햇살은 건물의 숲에 가려져 지면의 어두움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안나는 눈앞의 가로등을 중심으로 한 풀숲에 처박힌 소트니코바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역겨웠어."
 
 
"뭐가. 이게? 이게 얼마나 맛있는..."
 
 
"그게 아니고. 언니가 앉았던 쪽 사람하고, 그 윗사람들. 언니는 귀족도 아니면서 왜 거길..."
 
 
메가라가 사과주 병을 쭉 들이킨 다음, 안주로 나온 도마뱀 꼬리구이를 질겅질겅 씹었다.
 
 
"다 비즈니스지. 원래는 부르주아 쪽에 앉고 싶었어. 근데 어쩌겠니. 날 원하는 사람이 이리 많아서야..."
 
 
 
안나는 벌레씹은 표정에 가까운 웃음을 지으며 사과주의 뚜껑을 열었다. 불행 중 다행이게도 상금은 빼앗기지 않았으며, 린든으로 밀수를 하는 업자 한 명을 메가라의 인맥을 통해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전에 식사가 먼저였기에, 안나는 사과주를 조금 마셔 우울해진 기분을 돋구려 했다.
 
 
"이제 어디서 살지... 당분간 린든으론 못 돌아갈 텐데..."
 
 
"밀수업자 통해서 들어가면 되지 않아?"
 
 
메가라가 사과주 한 병을 추가로 주문한 다음 안나에게 말했다.
 
 
 
"아니, 돌아가도 아... 사람들 얼굴을 어떻게 보겠어..."
 
 
 
안나가 두 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말했다. 나름 다짐을 하고 린든을 떠났는데, 돌아온 건 안정적인 직위가 아닌 상금 주머니 하나일 뿐이었다.
 
 
"하... 밀수업이나 할까."
 
 
 
"얘, 얘는 무슨 큰일날 소리를 하고 있어. 그럼 나한테 올래? 공방 조수도 필요할 겸 새로운 비즈니스로 발을 좀 넓혀보려고 생각중인데."
 
 
 
"무슨 비즈니스. 우리 엄마에 대해서 찾을 수 있을 만한 거야?"
 
 
 
안나가 도마뱀 꼬리를 손으로 집어 씹으며 말했다. 평소라면 기겁을 하며 먹지 않았을 도마뱀은 취기에 몽롱해진 정신 상태에서 거리낌 없이 입으로 들어왔다.
 
 
"아니, 별 거 없어. 양조장을 좀 차려보려고!"
 
 
 
"양조장? 아, 너무 새로운 사업이잖아. 그리고 이미 시장에 양조장은 널리고 널렸어. 포기해. 애초에 양조 지식이 전무한데 뭘 더 하겠다고... 차라리 소품 제작 사업을 하는 게 어때? 언니 기술에서 크게 안 벗어나잖아."
 
 
 
"맞다 맞아! 그거다 얘! 그러니까 내 조수로 들어와!급료는 팍팍 줄 테니까!"
 
 
메가라는 두 번째 병의 뚜껑을 따고 안나에게 내밀었다. 안나는 멈칫했지만, 당장의 앞날을 위해 메가라의 조수로 들어가 있자고 생각하며 그녀의 병에 자신의 병을 맞부딪혔다.
 
 
 
 
 
 
 
59.
 
 
 
 
"게르다, 찾았어요?"
 
 
"아뇨, 공주님. 못 찾았어요. 분명 아까전만 해도 여기 있었다는데..."
 
 
 
축제 후 벌어진 연회에서 엘사는 자신의 존재가 그렇게 부각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아무도 잡지 않는 연회에서 벗어난 엘사는 후드를 뒤집어 쓰고 쓸쓸히 사라진 안나를 게르다와 마부 허버트와 함께 커보울의 이곳저곳을 찾고 다녔다.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선술집 '사냥개 구덩이'에서 메가라 그레이스란 여자와 함께 술을 마시고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이후론 감감 무소식이었다.
 
 
"공주님, 그만 포기하시는게 어떻겠습니까요. 이러다가 우리까지 길을 잃는다면..."
 
 
허버트가 엘사에게 말했다. 그의 말도 정답이었다. 모든 도시엔 감추고 싶어하는 지하가 존재하고, 지하엔 갱단이 존재했다. 또한 역병의 매개체인 쥐들 또한 돌아다녀 안전을 보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공주님, 공주님?"
 
 
여기서 포기해야 하나 슬픔에 잠긴 엘사의 시야에 불현듯, 덩치 큰 사내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두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저, 저거 맞네요. 양갈래 머리."
 
 
허버트가 손으로 오른쪽에 선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엘사는 후드를 머리에 꾹 누르며 세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벽 뒤에 숨어서 듣기로 했다. 엘사의 움직임에 오랫동안 그녀를 지켜본 시녀와 하인은 덩달아 나란히 벽에 숨었다.
 
 
"확실하죠? 여기 선금이요. 강 조개 진주까지 얹어 줄 테니까 부탁드려요."
 
 
"강 조개까지 준다고? 못할 이유가 없지. 나만 믿으라고, 안부도 전해주마. 근데... 메가라 씨는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잔뜩 취해 있는 거니?"
 
 
사내가 안나에게서 주머니를 받았고, 비틀거리며 겨우 서 있는 왼쪽의 여성을 향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 기쁜 일이 있어서 많이 걸쳤어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안나가 지인을 부축하고 사내에게 고개를 숙였다. 사내가 뒷골목으로 모습을 감추자, 안나는 여자를 벤치에 앉혀 놓고 물병을 쥐어주었다.
 
 
"아니, 여기서 자면 어떡해. 에버튼 가가 어딘지는 알려 주고 자야 할 거 아냐..."
 
 
엘사는 지금이야말로 안나에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리, 그리고 입이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거절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녀를 앞섰다.
 
 
 
"아, 아, 아...."
 
 
엘사는 다시 그녀를 부축해 일어나 자리를 뜨려는 안나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유 참, 허버트, 공주님 데리고 마차에 가 있어. 내가 데리고 올 테니까. 공주님?"
 
 
"으, 으응?"
 
 
"이번에 돌아가시며 자존감 수업 좀 받으셔야 겠어요. 교사를 부를 테니까, 이번엔 거절하면 안 돼요!"
 
 
게르다가 고약한 친척처럼 엘사에게 으름장을 놓고 자신 있게 두 사람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허버트의 안내를 받으며 마차로 되돌아온 엘사는, 게르다에게 무한한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게 될 새로운 교사에 대한 생각으로 속이 울렁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차에 오른 직후, 엘사는 덧창을 닫고 헛구역질을 두어 번 내뱉었다.
 
 
 
 
 
 
 
 
60.
 
 
 
"얘! 양갈래 머리! 거기! 잠깐 서 보렴."
 
 
안나는 아직 길에 드문드문 걸어가는 시민들에게 에버튼 가가 어디인지 물어려는 참이었다. 하지만 불현듯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곳엔 나긋하고 푸짐한 인상을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안나는 그녀의 앞치마를 통해 시녀 내지 하녀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혹시 귀족의 눈에 들어왔나?'
 
 
하지만 귀족은 아그나르와 생각을 같이하는, 일종의 팔과 다리같은 관계였다. 안나가 소트니코바를 죽이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금, 안나가 귀족의 눈에 들어올 일은 가능성이 낮았다. 부르주아일지라도 마찬가지였다. 절대적 존재인 황제의 눈치를 보아야 할 테고, 안나를 포용할 미친 사람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일 것이었다.
 
 
 
"저 말이예요?"
 
 
"여기에 양갈래 머리가 너 아니면 누가 있겠니. 우리 공... 아니, 주인님께서 너를 좀 보고 싶어 하신댄다."
 
 
"저를요? 정말요? 어떤 분이신데요?"
 
 
 
"따라와 보면 알 게다. 네 검술 실력이 마음에 드시나본데."
 
 
하지만 안나는 발을 뗄 수 없었다. 누군가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좋았지만 그것이 좋은 일이라고 확정지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고, 설령 요청에 응한들 메가라를 집에 데려다 주어야 하는게 우선이었다. 귀족이건 왕족이건, 가족같은 친구가 우선인 안나는 도리어 그녀를 경계했다.
 
 
"음, 크흠. 경호 일을 맡게 될 테고..."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안나가 상대방의 말을 끊고 질문했다. 휘둥그레진 두 눈에 당혹이 어려있었지만 안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미 황제의 앞에서 직언을 한 거지를 보았고, 자신 또한 절대군주 앞에서 부정을 올렸다. 더 나빠질 상황은 없었고, 몇 사람 심기를 건드는 것은 너무나도 사소한 일이 되었다.
 
 
"개인 정비 시간을 보장하는 경호 임무인가요?"
 
 
무릇 책을 읽지 않는 귀족이어도 찾아오는 손님에게 과시하기 위한 서고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안나는 어머니가 남긴 유품,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암살자들에 대해 책에서부터 찾기 시작하려 했다. 도서관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안나가 선술집에서 듣기론 땔깜이 부족해 사설 도서관들의 책이 장작 신세를 면치 못한다고 들었고, 황립 도서관만이 현재로썬 귀족의 서고와 함께 유이한 수단이었다. 황립 도서관에 들어가려면 귀족, 혹은 귀족의 수행원.왕족, 왕족의 수행원이었고, 이외의 출입이 가능한 사람은 주시자와 부르주아지가 있었다.
 
 
"그러니까..,  주인님이란 분이 책에 조예가 깊으시다는지..."
 
 
"그래. 책을 아주 많이 좋아하신단다. 그래서, 하겠니, 말겠니?"
 
 
"딱히 선택권이 있진 않은 거 같은데..,. 하루만 더 기다려 주시면 안될까요?"
 
 
안나가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시녀는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일 어디서 만날지 얘기하려무나"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에버튼 가...어디였더라. 언니, 언니? 야! 메가라! 집이 어디냐고..."
 
 
안나가 어깨에 기대어 잠에 빠진 메가라를 흔들었다. 어찌나 세게 흔들었는지 메가라의 머리가 핀이 빠진 인형처럼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에에버어튼 가 꼴똥지구 붉은지이이이부우우..."
 
 
 
"들으셨죠? 에버튼 가 굴뚝지구 붉은지붕?"
 
 
"오전 11시에 앞에서 만나도록 하지. 시간이 안된다면 오후에 아름드리 광장에서 다시 만나."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 시녀의 처진 등을 보면서, 안나는 가난한 귀족이어서 겨우 한 명을 안나에게 보낸 게 아닐까 생각했다. 가면사이자 부르주아인 메가라의 조수로 있어도 책은 접할 수 있고, 황립 도서관 출입을 가면에 대한 자료 조사 명목으로 드나들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안나는 가면을 만드는 일, 혹은 소품을 만드는 일은 죽어도 하기 싫었다.
 
 
'일단 언니 집에 가 있자...'
 
 
안나는 드르렁 코를 고는 메가라를 부축하며 벽 한쪽 구석에 붙여진 지도를 확인해 에버튼 가의 위치를 확인했다. 가방을 메고 있기에 벽을 탈 수는 없었기에, 안나는 거리의 풍경도 익힐 겸 천천히 커보울의 거리를 지나갔다.
 
 
 
 
 
 
 
 
61.
 
 
 
"에버튼 가 굴뚝지구 붉은지붕이라..."
 
 
엘사는 마차에 앉아 고민에 빠졌다. 게르다는 안나가 현재 유명한 가면사인 메가라의 집에 잠시 체류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공주라는 신분을 숨기고 만나자는 제안을 말하였고, 안나는 받아들였지만 엘사에겐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주라는 사실을 귀족처럼 쉽게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설령 밝혀도 안나가 믿을지 미지수였다.
 
 
"포터스티드에서 커보울까지 마차로 네 시간, 에버튼 가 까진 네 시간 반 정도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오래 영지를 비우시면 안 될 텐데 말입니다."
 
 
열린 덧창으로 허버트가 마차에 기대어 파이프 담배에 든 연초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영지에 하루 정도 늦을 것 같다고 전보를 쳐야겠어요."
 
 
"그 말은 즉슨... 이 근방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가시겠다는...?"
 
 
게르다와 허버트가 동시에 엘사를 보며 말했다. 아무리 존재감이 없는 사람일 지라도, 한 제국의 공주인 사람을 치안이 불안정한 곳에서 경호원 없이 묵게 하는 건 피고용인인 그들의 양심으로써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요, 허버트, 우리가 묵을 방을 알아오도록 해요."
 
 
엘사가 자신의 지갑에서 금화 열 닢을 꺼내 허버트에게 전하며 말했다.
 
 
"금화 열 닢이면... 아니, 한 닢이어도 충분합니다요."
 
 
허버트가 나머지 아홉 닢을 엘사에게 돌려 주고는, 게르다에게 자신이 지닌 두 정의 고래기름 권총 중 한 정을 게르다에게 맡겼다.
 
 
"총 쏘는 법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할게. 그럼, 후딱 다녀오겠습니다."
 
 
허버트가 두 사람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어둠 속으로 후다닥 사라졌다.
 
 
"저, 저 촐싹대는 꼴 좀 봐라. 어이구..."
 
 
허버트가 사라진 어둠을 보며 덧창을 닫은 게르다는, 혼자 궁시렁 대면서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엘사를 바라보았다.
 
 
"공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아마 그 아이는 공주님을 이해할 거여요."
 
 
하지만 엘사는 묵묵히 차가워진 장갑을 어루만질 뿐이었다. 충동적인 욕심으로 얼룩진 하루는 밀려오는 죄책의 파도를 맞이하고 있었다. 왜 뇌물을 쥐어주었을까, 왜 스스로 나서지 않았을까, 왜 나는 용기가 없을까 하는 자책만이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어쩌면 안나가 자신에겐 너무 과분한 존재일 수도 있었다.
 
 
"뇌물을 안 주었더라면..."
 
 
"네?"
 
 
 
"아무것도 아니예요..."
 
 
 
혼잣말에 의문을 가진 게르다에게, 엘사는 뇌물과 소트니코바의 인과관계를 후회하며 대답하기를 꺼려했다.
 
 
 
 
 
 
 
 
62.
 
 
 
 
안나는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놀라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에버튼 가로 들어온 안나는, 메가라를 알아본 경비대에게 신원 확인을 받고 그녀의 집에 들어와 침대에 그녀를 눕혔고, 거실의 붉은 벨벳 소파에 몸을 던졌다. 머리가 소파에 닿자마자 잠에 빠진 그녀는, 또 다시 공허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번에는 안나가 누운 소파와 바닥을 제외하곤 근처에 떠다니는 것이 전무했다. 이제는 정겨운 고래의 울음소리가 허공에 채워져 있었고 시선의 끝에 검은 눈의 방관자가 팔짱을 낀 채로 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생이 격변하였군, 그렇지?"
 
 
격변이란, 대회의 우승자가 될 뻔했지만, 소트니코바를 죽이지 않아 타이틀을 박탈당한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 죽이기라도 했어야 하나요."
 
 
안나는 지지 않고 그의 말을 맞받아쳤다.
 
 
"그건 네가 하기 나름이지. 만약 네가 죽였더라면 황제의 인정을 받고 직위를 얻어 이전과는 다른 유복한 삶을 살 수 있겠지만... 다른 선택을 했더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때려 눕혔고, 그 중엔 죽은 사람도 있지. 그 모든 상황은 네 손으로 만들어낸 원인의 끝이자, 결과의 시작이었어."
 
 
방관자의 모습이 잠시 사라졌고, 허공에 가루들이 모여 여러 개의 석상을 만들어 냈다. 안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무릎을 꿇고 비는 소트니코바, 멀뚱히 서 있는 안나, 그리고 런들 대거를 손에 쥔 아그나르. 안나는 방관자가 괜히 이 장면을 보여준 게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소트니코바의 치마가 불룩 튀어나와 있음을 확인했다. 자세히 살펴보자, 치맛자락에 단도로 추정되는 실루엣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저 여자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황제에게 접근했지. 하지만 네가 있어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어. 아마 수많은 자들이 네 목숨을 노리려 들 거야. 숨든, 숨지 않든. 파도는 필연적으로 너를 집어 삼킬 테지."
 
 
 
모습을 감췄던 방관자가 안나의 소파에 걸터 앉으며 말했다.
 
 
"너는 지금 고민을 하고 있어. 인연의 둥지에 머무를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흰 숲으로 향할지."
 
 
"뭘 하던 당신은 지켜볼 거 아닌가요? 이제 그만 깨워 주세요. 아니, 잠 좀 자게 내버려 둬요. 좀!"
 
 
안나는 방관자에게 짜증을 냈다. 도대체 안나에게 뭘 어떡하란 건지, 안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건 한 가지야, 너 하나로 둥지가 유지 되느냐, 유지되지 않느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운명의  파도는 널 신경쓰지 않으니까."
 
 
방관자의 두루뭉술한 말을 끝으로, 눈앞이 밝아지며 안나는 소파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자기 전 보았던 샹들리제, 소파 앞 탁자 위의 과일을 놓은 접시, 그리고 탁자 너머의 벽난로와 그 위에 고정된 소콜로프가 그려낸 {후드를 쓴 반역의 칼잡이}가 무심하게 안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둥지...'
 
 
 
안나는 소파 뒤로 보이는, 닫힌 문으로 시선을 향했다. 둥지, 운명의 파도, 둥지, 운명의 파도. 그리고 방관자는 인연이란 말을 덧붙여 안나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안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동이 터오는 광경을 담아내고 있는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방관자의 말을 근거로 하자면, 안나는 지금 특정한 목적을 지닌 단체의 추적을 받고 있으며, 단체의 영향이건 아니건 이곳에 머무름의 유무에 따라 메가라에게 영향이 간다는 사실이 도출되었다. 안나는 고아원에 있던 시절, 새벽까지 호롱불을 켜놓고 가면을 깎던 메가라를 상기시켰다.
 
 
 
겨우 린든을 떠나 자리를 잡았는데, 자신 때문에 여생을 망치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안나는 하는 수 없이, 메가라의 둥지를 떠나는 것을 택했다. 이기주의와 전체주의가 지금 안나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인연을 죽게 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향하는 칼날을 이름모를 귀족에게 돌리는 게 낫다고 안나는 생각했다. 대회장에서 딜런의 공격에 구토를 하는 안나에게, 귀족들은 사회자의 요청에도 물병 하나 내주지 않았다. 차라리 자신이 죽더라도, 역겨운 귀족 한 명이 더 죽는 게 심리적으로 편할 것이었다.
 
 
 
 
 
 
 
 
63.
 
 
"으안나, 안나아?"
 
 
메가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젯밤의 기억이 거의 모두 사라진 채로 잠이 들은 모양이었다. 안나와 함께 '사냥개 구덩이'에서 술과 도마뱀 구이를 먹은 것까지 기억났지만, 그 이후론 기억이란 끈을 가위로 잘라낸 것 같은 이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 자신의 집 침대에 눕힌 사람은 다른 이도 아닌 안나일 것이라 생각한 메가라였다. 터너와 이름 모를 귀족은 진즉에 뿌리친 데다, 그들은 그녀를 쫓아 더럽디 더러운 사냥개 구덩이에 발을 들이기 꺼려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존엄하다 여기는 귀족들이지만, 정작 그들을 떠받치는 부르주아지와 시민들은 깔개 취급하는 위선을 마주했던 그녀로써 이런 확신을 내는 데엔 확실한 근거가 되었다
 
 
 
 
두통을 없애려 서랍을 뒤져 해장용 위스키 병을 꺼낸 메가라는 뚜껑에 위스키를 조금 부어 마신 뒤 창문을 열어 탁해진 공기를 환기시켰다. 데워지지 않은 아침의 공기 속에서 마차의 소리, 카페로 손님들을 이끄는 호객꾼들, 그리고 이따금 치직거리며 고래기름을 낭비하는 빛의 장벽들이 보였다. 가면을 유통해 돈방석에 앉은 메가라였지만, 그녀는 가정부 하나 두지 않는, 부르주아들 중에서 상당히 검소한 축에 속했다. 그녀는 지난 밤 술에 취해 빛의 장벽을 유지할 고래기름 통을 교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안나도 찾을 허둥지둥 지하실 열쇠를 서랍에서 꺼내 침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소파 위에 놓여진 접혀진 쪽지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취기가 가시지 않아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쪽지를 펴 읽어보았다.
 
 
 
 
 
[언니 미안, 사실 어제 언니가 취했을 때 고용 제의를 받았어. 그리고 언니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난 칼을 휘두르지, 물건을 다듬는 데엔 쥐뿔도 없잖아. 이렇게 얘기도 없이 가서 미안해!
 
 
 
 
※탁자 위에 놓여진 서코노스산 포도, 몰리 산 사과는 내가 모두 먹었음. 맛있더라!
 
 
 
※눈사람 가면은 아직도 잘 가지고 있어. 나중에 가면 무도회가 열리면 만날 지도 모르겠다. 안뇽!]
 
 
 
 
 
 
 
 
64.
 
 
 
신기루와 같은 아침은 정오를 향해 허리를 젖히고 있었다. 광장 전체를 둘러싸 수많은 계층의 사람들을 수용시시켰던 어제의 검술 대회장은 지난 밤에 모두 철거되었다. 안나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빈 광장을 지키는 몇 마리의 쥐, 그리고 이빨 빠진 노견들의 무리들을 건물들이 만들어낸 어둠 속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은 시녀가 말했던 11시를 지났고, 다음 약속 장소는 아름드리 광장 앞이었다. 안나는 방관자가 했던 말을 곱씹으면서, 자신을 노리고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위협에 대비해 쪽잠으로 버티고 있었다. 안나는 린든에서 권총을 가져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지금 이 순간, 안나가 가지고 있는 대항 수단은 매티어스의 목검과 앨런 다포의 목재 세검 뿐이었다.  상점으로 달려가 검을 사면 된다지만, 그 사이에 자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주인님'과의 만남이 틀어질 것 같아 쉽사리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언제 오냐고오...."
 
 
안나는 투덜거리며 돌바닥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 때였다. 어제 만났던 시녀가 두리번거리면서 아름드리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안나는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고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에그머니나!"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안나를 보고 어제의 시녀는 당당함을 내비치지 않고 당혹스러움을 표출했다.
 
 
"깜짝 놀랐잖니, 요것아!"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없으니까, 어서 따라오기나 해."
 
 
쌀쌀맞게 구는 시녀가 손짓을 하고 광장을 떠나자, 안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가방을 고쳐맨 뒤 씰룩거리는 시녀의 엉덩이를 뒤따랐다.
 
 
 
 
 
 
 
 
 
65.
 
 
저기, 근데 이름이 뭐예요? 전 안나...윈터예요.
 
게르다, 게르다라고 부르렴.
 
음, 게르라고 불러도 되나요? 그리고... 절 고용할 주인님 성함은...
 
그 분의 이름을 함부로 언급하면 안 돼. 자, 저 마차에 오르려무나.
 
 
 
 
 
 
66.
 
"뭐야, 어제 그 마구간 같은 마차잖아!"
 
 
안나는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며 외쳤다. 막 린든을 벗어나 커보울의 미로에 적응하려던 안나를 들이받을 뻔 했던 낡은 마차를 마주함으로써, 자신을 고용하려는 사람이 가난한 귀족이란 사실은 기정 사실화 되었다.
 
 
"말 조심 좀 하지 그래?"
 
 
마부석에 앉아 시가를 뻐끔거리며 피워대는, 어제 보았던 사내가 안나에게 말했다.
 
 
"게르다, 저 꼬맹이었어요? 이거 참, 다들 보는 눈이 없으신데..."
 
 
"허버트, 그러다 잘리는 수가 있어. 조심해."
 
 
"허허, 어디가 잘려요, 제 직장? 아니면 불알? 아니면..."
 
 
너스레를 떨며 웃어재끼는 허버트가 다 피워낸 시가를 왼쪽 마부석에 비벼 껐다.
 
 
"네가 그렇게 칼을 잘 쓴다며, 게르다 씨가 어제 네 경기를 봤고... 우리 공...주!  인님께서도 감명깊게 보셨다더라. 어서 타라."
 
 
안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자연스럽게 허버트의 왼쪽에 타려고 했다. 아무리 낡은 마차일지라도 귀족과 같은 마차에 타는건 크나큰 결례일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막 엉덩이를 붙이려던 안나를 게르다가 끌어내렸다.
 
 
"네가 앉을 곳은 거기가 아니라 마차야."
 
 
게르다가 마차를 가리키며 안나에게 쏘아붙였다.
 
 
"가방도 빼고!"
 
 
"아, 알았어요..되게 날카로우시네."
 
 
가방을 게르다에게 맡긴 안나는 게르다의 히스테리에 몸서리를 치며 마차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밖에서 보던 대로 마차의 안은 겨우 두 명이 마주 앉을 수 있을 만큼 작고, 좁았다. 게르다가 왜 가방을 빼라고 한 건지 이해한 안나는 고개를 조금 기울여 자신의 고용인을 확인하려 했지만, 기묘하게 햇빛이 마차 안에 그늘을 만들었고, 말 그대로 고용인의 얼굴엔 베일이 드리워져 있었다.
 
 
'미망인인가? 아니면 귀부인?'
 
 
안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마차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세검과 목검을 풀고 다리 사이에 끼우자, 그제서야 눈앞의 여성의 전체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답답할 정도로 머리와 턱밑을 제외하곤 드러나지 않는 청색 드레스, 그것의 목에는 커다란 브로치가 채여져 있었다. 베일에 싸인 외모는 갸름한 얼굴선에 창백한 피부가 특징인 것도 확인했다.
 
 
"저...안녕하세...요?"
 
 
 
고용인이 침묵으로 일관하자, 안나는 답답하기 그지없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가워."
 
 
 
보통의 대답이었지만, 기만적이지 않은 대신에, 냉기가 서려있었다. 안나는 그녀의 말에 기세를 조금 위축시켰다. 자존심이 센 귀족인가보네. 안나는 그녀를 이렇게 평가했다.
 
 
 
"전 안나 윈터예요. 납작빵으로 유명한 사군토의..."
 
 
"알고 있어. 검술 대회 우승자이자, 동시에 황제에게 낙인이 찍힌 비운의 인재지. 내 말이...맞니?"
 
 
안나는 그 말에 풀이 죽고 말았다. 조만간 귀족의 사교계엔 안나의 이름이 안 좋은 의미로 오고갈 것이 눈에 선했다. 조용히 지내며 어머니의 죽음을 밝히려는 안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지 마. 나랑 같이 있으면 머지 않아 잠잠해질 거야."
 
 
"...무슨 근거로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
 
 
"엘사 아렌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니?"
 
 
엘사? 안나는 무의식적으로 메가라가 말해줬던 공주의 키워드를 떠올렸다.
 
 
"얼음 마녀?"
 
 
"그게 전부니?"
 
 
안나는 화가 섞인 듯한 그녀의 추궁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흔들리는 베일 속을 무심코 들여다 본 안나는, 그녀의 외모가 퍽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흔들리는 눈으로 안나를 잠시 노려본 뒤, 이내 베일을 벗어넘겼다. 한올 한올 세공한 듯이 말아 올려 굳힌 유리같은 백금색 머리, 그에 맞춰진 창백한 피부와 안나와 똑같은 청색 눈이 보석을 연상케 했다.
 
 
"...혹시이..."
 
 
 
안나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정체를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녀의 한숨이 안나의 질문을 잘랐다.
 
 
"그래, 내가 바로 너희들이 씹어대는 얼음 마녀이자..아렌델 제국의 공주인...엘사 아렌이야."
 
 
안나는 순간, 제국의 공주 앞에서 욕을 보인 것, 어제 마차에 부딪힐 뻔한 것 때문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대체 어느 왕족이, 더군다나 직계 왕족이 이렇게 낡은 마차를 타느냐고 눈앞의 공주에게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말 한마디에 안나의 목이 날아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제 주머니는 잘 썼니?"
 
 
엘사가 미소를 만연한 채 안나에게 물었다. 섬뜩하게 아름다우며, 오한이 들 정도로 냉담한 미소를 짓는 엘사를 보며, 안나는 눈앞의 여인이 자신을 골려주기 위해 얕은 장난 겸 테스트를 하는 건지 의심했다.
 
한 왕국의 공주가 되는 사람이, 이렇게 낡아 빠진 마차를 타고 다닐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67.
 
 
 
'이게 아니잖아. 바보팅아!'
 
 
엘사는 스스로에게 자조하며 잔뜩 경직된 이 상황을 누그러뜨려보려 했다. 얼음 마녀라는 역린이 깃든 단어를 겨우 넘기나 싶었지만, 지난 밤 여관의 곰팡내 나는 침대에서 안나를 볼 생각에 밤을 지새 신경이 날카로워진 탓에, 그녀 특유의 냉담한 웃음이 얼굴에 드리워진 것이라고 엘사는 생각했다. 생각을 반증하듯, 눈앞에 있는 풋풋하기 그지없는 여검사의 얼굴에 만연하던 장난기가 신분을 드러냄을 기점으로 싹 사라졌고, 극도의 불안이 눈에 깃들었다. 엘사는 이렇게 밖에 남을 대해주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안나를 눈앞에 두고, 엘사는 얼굴을 파묻고 펑펑 소리 내어 울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
 
 
 
 
 
 
68.
 
 
 
 
"어떻게 하실 겁니까?"
 
 
멀어져가는 마차를 지붕 위에서 지켜보던 보라색 로브 차림의 사내 '브랜든'이 멜리사에게 물었다. 멜리사는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들고있던 망원경을 접어 넣었다. 멜리사는 막간의 변수로 성전 기사단(템플러)의 정점이자, 그랜드 마스터인 제국의 황제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 소트니코바라는 중급 암살단원이 그 역할을 자처했고, 티비아의 빈민이라는 역할에 충실하면서 단도 하나에 모든 걸 걸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보안은 철통같았으며, 검술 대회의 보안을 맡게 된 주시자들은 기사단의 입김을 받고 있는 고위 주시자 카산드라 휘하의 사람들이었다. 그나마 경계가 느슨한 제3신분의 관람석에서 뛰쳐 나왔으나, 하필이면 그 순간이 우승자에게 내리는 시상식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소트니코바를 보조하기 위해 제3신분 관람석에 앉아있던 브랜든은 우승자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잘 벼려진 칼날 같은 그녀의 눈빛이 소트니코바를 째려보았고, 소트니코바가 쉽게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의외의 결과로, 그녀는 아그나르에게서 시상품을 뺏겼고, 소트니코바는 예상 밖의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황제의 단검에 찔려 죽고 말았다.
 
 
 
"벨 씨가 아끼는 아인데..."
 
 
"브랜든, 나도 알아.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에 걸림돌이 있어선 안 돼."
 
 
멜리사가 건조해진 두 눈을 비비며 말했다. 안나의 모습을 멜리사는 어젯밤 사무소를 떠나는 그녀의 뒤를 미행해 확인했다. 벨은 안나는 무관한 아이라고 연신 강조했지만, 안나는 황실의 멸시를 받고 있는 공주의 마차에 올라 사라지고 말았다. 과정이 어떻든 황실은 암살단의 적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언젠가 황제를 포함한 모든 기득권층을 기요틴에 올려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안나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으리라고 멜리사는 생각했다.
 
 
 
"걸림돌이 있으면 발로 차 없애야지."
 
 
멜리사가 손목을 비틀어 암살검을 사출하며 말했다.
 
 
"그리고... 메가라 그레이스란 사람은 어떡할까요? 그 사람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평민 출신의 가면사이자 귀족들의 인맥이 두텁다고 하더군요."
 
 
브랜든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의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메가라는 암살 대상의 성격과는 거리가 먼, 그저 돈이 많은 신흥 부르주아지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소트니코바의 암살을 실패하게 만든 변수인 안나와 관계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인다는 것은 불명예스러웠다.
 
 
 
"일단 그녀는 당분간 감시해야겠어. 그녀가 암살 대상을 후원하는지 뒤를 캐야 하니까."
 
 
 
 
강물에서 피어난 안개가 도심의 지붕에 내려앉았다. 멜리사는 안개에 보이지 않게 된 에버튼 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가면사가 어떻게 귀족들의 틈에 끼어들게 되었는지를 중점으로 한 감시망을 만들어 달라고 상부에 요청하기로 마음먹었다.
?

팬픽

작성 혹은 번역된 팬픽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List of Articles
No. Category Subject Author Date Views
240 Short Story [재업] 레스토랑 서버 안나x싱어 엘사 겨울은 역시 재즈 아닐까... 브로드웨이의 레스토랑에서 재즈 싱어로 일하는 엘사와 거기서 서버로 일하는 배우 지망생 안나 보고 싶다 여기 싱어가 그렇게 유명... 백업용 2023.02.08 654
239 Long Story [재업] 냉미녀 배우랑 댕댕상 경호원의 취미활동 4 ※BDSM 플레이 주의 ※호불호가 갈리는 소재를 다루거나, 언급 또는 암시하고 있음 ※도구 사용 주의 ※더티토크, 노골적인 단어 사용 주의 ※긴 분량 주의 (10, 000↑... 백업용 2022.12.06 1186
238 Long Story 하수구의 뱀과 거리의 개 4+5           “날이 좋네요. 미스 그레이스. 차 바꾸셨어요?”     깔끔하게 입은 흰 셔츠와 반듯하게 다림질한 검은색 양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베이지색 비니를 눌러... Lexku2 2022.10.16 608
237 Short Story [재업] 친언니 레릿엘을 욕정하는 안나의 꿈에 찾아온 몽마 정령엘     평소와 똑같은 집, 현실과 다를 바 없는 감각인데 뭔가 이상한 거지. 그건 바로 엘사가 은근한 시선을 보내오는 것. 안나는 친언니를 상대로 욕정하고 더러운... 백업용 2022.10.08 900
236 Short Story [재업]뱀파이어 엘사랑 늑대인간 안나 보고 싶다 약 200년 전에 동상에 걸려 죽어가던 인간 엘사, 뱀파이어화 시켜 살려놓았더니 죽어도 사람 피 빼먹는 짓은 못한다고 거부해서 죽지도 못하고 항상 비실비실하... 백업용 2022.10.08 616
235 Short Story 썰 돌려먹은거 백업용 *산란 *애널비즈 *3p *강제적인 요소 *투홀사용 *내가 쓴것만 백업함 *알바한테 지금까지 짤린 픽썰이 족히 30개는 넘는데 신고충 때문에 짤리는건 참을수가없어... 신고충피난처 2022.09.09 1092
234 Text File Say You Love Me 텍본 재활용 2022.08.02 507
233 Long Story 하수구의 뱀과 거리의 개3.         하수구의 뱀과 거리의 개. 뒷뒷이야기.         엘사는 내비게이션에 표시되는 길을 따라 차를 운전했다. 목적지는 안나가 보낸 주소였다. 도착해보니 높... Lexku2 2022.07.25 416
232 Long Story [재업/수정] 하수구의 뱀과 거리의 개 1, 2. 본 시리즈는 강압적이고 소재에 호불호가 있으며 도구사용으로 주의가 필요함.         하수구의 뱀과 거리의 개.     ​     ​         “아. 일어났어? 안녕, 예... Lexku2 2022.07.17 604
231 Short Story [재업] 프롬 파티날 밤에 첫경험하는 거 보고싶다 안나 프롬날 부모님이 급하게 어디 갈 일 생겨서 대학교 기숙사 사는 엘사한테 안나 케어 좀 하라 했더니 차 끌고 애프터프롬 파티에 가 있는 안나 찾으러 간 거... 백업용 2022.07.04 1501
230 Long Story Small Town Sisters. 본편+외전               서문. 같은 공간에서 산다는 것은, 하루에 몇 번이라도 마주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의도적으로 ... Lexku2 2022.04.05 757
229 Short Story 8년차 설줌은 엘산나로 빻은 게 보고 싶은 날이 있다. -기저귀, 실금, 수면 주의       싫다는 엘사 유아용 침대에 넘어뜨리듯이 눕히고 기저귀 채운 채 양손은 침대 헤드 보드에 묶어놓는 안나가 보고 싶다. 근이완제... 1 c2m5 2022.02.02 2976
228 Short Story 설표 엘사랑 보건선생님 안나가 보고싶다.   -저는 개씹 변태입니다. -도구사용 (주로 스트랩온) -애널사용 -주의문구 박을수있는만큼 박고싶은 수인세계관                   드물게도 엘사가 아침부터 헐... c2m5 2021.12.27 2735
227 Long Story [픽]마녀를 홀리는 묘약     인간 아이를 주웠을 때는 별 생각 없는 양심적인 태도에서 기인했다.  인간 아이에게는 가여운 운명, 하지만 마녀에게는 약간 동한 흥미와 유희거리?  다만 ... ㅁㄴㅇㄹ 2021.06.15 1666
226 Short Story Who's sorry now? 06           06.     회의가 있는 날, 닷새 만에 다시 만난 스벤은 마지막에 보았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는 숙취에 찌든 모습으로 회색 세단의 ... Lexku2 2021.06.13 613
225 Long Story [재업/번역]이두나의 50가지 그림자 프롤로그~챕터7 프롤로그 오직 아토할란만이 알고 있단다.           -어두운 바다에서.               폭풍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성난 검은 하늘을 번개가 치고, 곧이어 천둥... 개구리 2021.05.16 1053
224 Long Story 꼭두각시의 칼 27~28   85.   "공주님도 그렇고, 수호경님도 그렇고... 왜이리 판박이신지."   엘사와 안나, 두 사람은 뒷뜰에서 새벽에 성으로 막 돌아온 게르다에게 가벼운 꾸지람을... 개구리 2021.04.12 239
223 Long Story 꼭두각시의 칼 25~26     새벽녘에 그친 비는 희끄무리한 서녘의 아침 안개를 흔적으로 남겼다. 엘사는 다시 말에 타는 동안, 도시의 어두운 이면을 두 눈으로 직면하는 순간을 영원히... 개구리 2021.03.29 236
222 Long Story Arens of Sheffield 21~22   57.       "어, 메그. 나야 안나. 지금 뭐하고 있어?"     안나는 자신의 시각 뒤로 지나가는 나무들을 보며 말했다. 창밖을 열어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이두... 개구리 2021.03.29 176
221 [장편] Lullaby - 45 새롭게 나타난 영혼은 어안이 벙벙한지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연거푸 주위를 둘러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 영혼의 겉모습은 늙고 추레해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 운영 2021.03.22 238
220 Long Story 질투심 넘치는 엘사가 광적으로 집착하는 픽 - 1   "요즘 기분 안 좋은 일이 있나요?"    "조금요. 안 좋다기 보다는 거슬리는 일이 있죠."    "어느 부분에서 그런 일이 있나요? 사적인 관계, 직장에서의 스트레... ㅊㅊㅁㅅㄱ 2021.03.22 2299
219 Text File [그림+픽] 뱀수인 엘사 이야기 한페이지용 수정 3 엘산나픽용 2021.03.21 818
218 Text File [그림+픽] 뱀수인 이야기 두페이지 버전 (수정3) 엘산나픽용 2021.03.21 306
217 Text File [그림 + 픽] 뱀수인 엘사 이야기 속지 X 버전 (수정3) 엘산나픽용 2021.03.21 311
216 Text File [그림+픽] 뱀수인 엘사 이야기 속지 O 버전 (수정3) 엘산나픽용 2021.03.21 909
» Long Story [팬픽]꼭두각시의 칼 19~22 49.       "아오오..." 첫 번째 경기는 안나의 예상보다 훨씬 일찍 끝나 버렸다. 대기실로 돌아온 안나는 급격하게 분출된 흥분의 후유증으로 긴 의자에 드러누워... 개구리 2021.03.14 230
214 Long Story [팬픽]Arens of Sheffield 15~16       36.   "미안해 안나..." 엘사는 안나의 얼굴에 드리워진 수심을 느낄 수 있었다. 권총 부문에선 제인 팀과 안나 팀이 동점으로 공동 1등으로 점수를 마무리... 개구리 2021.03.14 173
213 Long Story Self Stalking - 0       내 삶은 한 달 전과 비교했을 때 180도 달라져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1년의 장기 휴직 신청서를 제출하고 집 밖을 나서본적이 거의 없었다. 운이 좋았다.... ㅊㅊㅁㅅㄱ 2021.02.18 571
212 Long Story 엘안엘 센티넬) 가이드는 센티넬의 개 5         A블럭 관리 직원 전원이 교정국을 떠난 건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C블럭에서 일어났던 센티넬 살인 사건이 희망 퇴직의 이유라는 말이 떠돌았지만 믿을 ... 1 히히 2021.01.30 1975
211 Text File 허기에 관하여 dontstarve 2021.01.18 979
210 [fic] Obsession (9)       안나/엘사       Obsession       (9)           솔직히 말하면 엘사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나는 엘사가 나에게 매달리는 것이 좋았다. 엘사의 편집증과 ... ㅇㅇ (110.8) 2021.01.10 566
209 Long Story [번역]Only One Year, Chapter 64 64. Ski Resort     두 자매가 아렌델에 도착한 건 점심이 다 되어서였고, 부모님은 딸들을 보자마자 따뜻하게 끌어안았다. 엘사와 안나는 둘이서만 지낼 수 있는... 1 토익빌런 2020.11.16 634
208 Long Story [번역]Only One Year, Chapter 63 63. Texting     둘이서 아무 말 없이 걷기를 5분, 마침내 학교에 도착했다. 둘에게는 다행히도 정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몇 번 대화를 나눈 친절한 사람이었다... 토익빌런 2020.11.16 382
207 Long Story [번역]Only One Year, Chapter 62 62. Home Sweet Home     다음날 아침, 안나는 언니보다 먼저 눈을 떴기에 엘사를 깜짝 놀라게 만들어 주려고 했다. 둘 다 부모님에게 학교에 갈 준비를 해야 한... 토익빌런 2020.11.16 363
206 Long Story [번역]Only One Year, Chapter 60 60. Preparations     다음날 아침, 엘사는 자신들이 얼마나 멍청하고 위험한 행동을 했는지 실감하고 있었다. 안나의 근처에 있을 때 내가 얼마나 미쳐버리는지 ... 토익빌런 2020.11.16 359
205 Long Story [번역]Only One Year, Chapter 59 59. Blankets     다음날 아침, 안나가 눈을 떴을 때는 정말 좋은 기분이었지만 동시에 너무나 피곤한 상태였다. 어젯밤은 정말로 멋졌지만, 그만큼 잠을 덜 자긴... 토익빌런 2020.11.16 620
204 Short Story 야한게 쓰고 싶어서 싸질러놓고 잘릴 것 같아서 백업한다 충혈되어 발갛게 달아오른 그 곳에 가져다 대면 코 끝에 못 견딜 정도로 농염한 엘사의 체취가 느껴진다. 마치 방끔 딴 석류에서 볼 법한 반들반들 한 빛깔이 촛... 설쥬미 2020.11.14 3949
203 [빼빼로데이] 양방향 딜도 ㅇㅇ (110.8) 2020.11.11 5009
202 Long Story 엘안엘 센티넬) 가이드는 센티넬의 개야 4         안나는 절정의 여운에 젖어 멍해진 채로 얼마간 숨을 헐떡거렸다. 울대를 비집고 올라간 흐느낌이 벌어진 입밖으로 새어나갔다.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린 ... 히히 2020.11.04 1749
201 #32. 왕과 정령과 마법의 이야기 (完)     , 처음 만났을 때보다야 무거워졌지만 여전히 한 손으로 가볍게 들리는 엘사의 무게에 안나는 혀를 차며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았어. 고혹적으로 미소짓는 엘... ASIS 2020.10.30 566
200 Long Story 엘안엘 센티넬) 가이드는 센티넬의 개야 3             두 사람이 떠난 공간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안나는 멍하니 서서 거실을 눈으로 훑었다. 창가 협탁 위를 장식한 태피스트리와 쇼파에 놓인 담요가 정... 히히 2020.10.25 1762
199 외동딸 아포칼립스 8 *삽입행위/도구/강압 주의. 누구나 하나씩은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지 않은가. 엘사의 경우엔 그게 크리스마스 이브의 일이었다. 비록 안나에게 ... 고동 (58.140) 2020.10.25 1188
198 Long Story 엘안엘 센티넬) 가이드는 센티넬의 개야 2           "그쪽은 안나 테일러, 맞나요? 아직 식전일 텐데, 이리 와서 먹어요."     ​엘사가 수플레 팬케이크가 담긴 접시와 홍차 티팟을 아일랜드 위에 옮기고... 2 히히 2020.10.21 2129
197 Short Story 화해 생수     "저리 가."     안나는 여전히 뒷모습을 보인 채 신경질적으로 키보드를 두들기며 '나 아직 화났어'를 온몸으로 표현중이었다. 꺼져도 아니고 '저리 가'라니.... 1 ㅇㅅㄴㅂㅇ 2020.10.14 1675
196 Long Story Praying prey Q&A + 비하인드 설정 +@@ 개구리 2020.08.31 703
195 [번역] Min Søster Bursdagskake Ch.6 (完) 원문링크 : https://www.fanfiction.net/s/10079097/5/Min-S%C3%B8ster-Bursdagskake     Min Søster Bursdagskake 1-1 Min Søster Bursdagskake 1-2 Min Søster ... 1 모카. 2020.08.13 869
194 [번역] Min Søster Bursdagskake Ch.5 - 下 원문링크 : https://www.fanfiction.net/s/10079097/5/Min-S%C3%B8ster-Bursdagskake     Min Søster Bursdagskake 1-1 Min Søster Bursdagskake 1-2 Min Søster ... 모카. 2020.08.04 622
193 [번역] Min Søster Bursdagskake Ch.5 - 上 원문링크 : https://www.fanfiction.net/s/10079097/5/Min-S%C3%B8ster-Bursdagskake     Min Søster Bursdagskake 1-1 Min Søster Bursdagskake 1-2 Min Søster ... 모카. 2020.08.04 868
192 Long Story 결혼 계약서(21) - 수위   안나의 말이 신호탄이 된 것처럼 두 사람은 거칠 것 없이 서로를 탐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오랜 시간 기다렸다는 듯, 천천히 향부터 음미하듯이 서로의 살 내음... ㅇㅇㅇㅇ 2020.08.04 3308
191 Short Story [오피스위크/수위] 너라면 괜찮아 원작 쥬미의 부탁으로 대신 올린거임 수위 *사수 안나, 부사수 엘사 *엘공 *오피스물이지만 오피스가 메인이 아닌 *떡단편픽 오피스위크길래 썼는데 오피스는 쬐... 케찹2 2020.06.28 3784
List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