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마녀를 홀리는 묘약
인간 아이를 주웠을 때는 별 생각 없는 양심적인 태도에서 기인했다.
인간 아이에게는 가여운 운명, 하지만 마녀에게는 약간 동한 흥미와 유희거리?
다만 내가 조금 낯설었던 것은 7살 정도 되보이는 조금 큰 여자아이가 울지도 않고 숲 속을 배회하고 있었다는 점과 숲의 마녀를 만나자마자 무서워 하는게 아니라 드디어 나를 발견했다는 듯 해맑게 웃었다는 점.
"길을 잃었니? 부모님은 어디가셨니? 왜 여기에 있는거니? 혼자 얼마나 해매고 있었니? 잠은? 끼니는?"
"네, 처음부터 없었어요,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왔어요, 다섯 밤 정도요, 나무 밑둥에 기대서요, 과일 나무가 많고 샘이 있어서 괜찮았어요."
몇 가지 질문들에 여자아이는 검지손가락을 손바닥에 톡톡 두드리더니 접어가면서 대답했다.
평범한 여자아이라 가볍게 치부하기에는 너무 침착한 대답들에 나는 이 아이가 범상치 않은 재능이 있음을 눈치챘다.
만나자마자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는 꼬마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몇 가지 더 물어본다.
"이름이 뭐니?"
"안나요."
"그냥 안나야?"
"네에!"
"너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니?"
"마녀님이요. 숲과 산에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래, 마녀. 내가 무섭지 않아?"
"전혀요! 소문은 익히 들었어요.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여자아이는 익살스럽게 송곳니를 뾰족이는 제스쳐로 답했다. 몇 백년을 살았더라. 여하튼 그 긴 세월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었을까?
나는 오랜만에 겪는 황당한 감정에 아까 느낀 흥미가 섞여서 안나라는 요 맹랑한 꼬맹이를 거두기로 결정했다.
마녀의 눈은 특별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다. 거의 점쟁이나 다름 없지만 신통한 점쟁이랄까?
나는 첫만남에서 이대로 무시하거나 다시 마을 어귀에 데려다 놓기에는 좀 더 가치 있는 아이임을 알아봤다.
"따라와." 그 한마디에 안나는 작달만한 다리로 쫄래쫄래 내 뒤를 따라와 마치 내가 엄마인 것처럼 치마자락에 들러붙었다.
몇 번 인간들과 지내봤지만 안나라는 꼬마는 인간 기준에서 상당히 비범했다. 또 인간답게 정말 물 흐르듯 금새 적응해간다.
안나는 알아서 자기가 할 일을 했고 주제에 감자나 호박 등을 열심히 손질해서 요리도 했다.
기특하게 내 몫까지 챙겨놓길래 맛을 봤더니 여기까지는 영 꽝이라 요리는 다시 가르켰다.
덧붙여서 재료 손질한다고 조막만한 손을 낑낑대는 통에 버리는게 태반이라 그것도.
이런 흉내는 어떻게 내냐고 물었더니 고아원에서는 여자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음식 손질을 했고 좀 더 윗나이 언니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본적 있다고 했다.
오전이 되면 안나는 숲 속 근처를 배회하며 산딸기를 캐거나 물을 길러 다니면서 틈틈히 마주치는 동물들을 늘려갔다.
이름도 가지각색이라 토끼는 릴리, 다람쥐는 데일, 사슴은 밤비. 앵무새는 피터...
그나저나 이 숲에 있는 동물들은 내가 사는 집 근방까지 오는 적이 없는데 요즘은 그 경계선이 깨져있다. 아마도 음식을 챙겨주는 안나 때문이리라.
그러다가 호랑이 아님 늑대무리를 마주치면 어쩔거냐고 하니까 안나는 잠깐 고민하더니 "그럼 마녀님이 금방 나타나 주세요!" 라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오후에는 집에서 책을 읽었다.
서재에서 만지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마도서가 있는 칸은 제외하고 다른 것들은 전부 보이는대로 꺼내다가 읽는다.
제 딴에는 너무 책이 많으니까 그냥 한칸, 한칸씩 있는 걸 전부 가져와 부딪히기로 결정했나 보다.
안나에게는 어려워 보이는 책도 소리내서 가가구구 글자 배우듯 그러고 있길래 수준에 맞게 읽어보면 좋은 순서를 몇 가지 정해서 일러줬다.
안나는 책을 보다가 잠들어 있고는 했다.
나는 며칠씩 집을 비우고 북쪽산 끝까지 올랐다가 오거나 모습을 바꿔서 왕궁 시장을 다녀왔다.
그 사이에 안나에게 할 일을 말해놓으면 자기가 순서를 정해서 알아서 잘해놨다.
우리 사이는 구분짓지 않았지만 안나가 집안 살림을 도맡았고 덕택에 나는 좀 더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게 됐다.
안나는 처음 배운 요리 솜씨가 꽤나 좋아져서 시장에서 사온 치즈나 버터, 고기들을 가지고 곧잘 요리를 내왔는데 메뉴는 그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집에서 지낸지 한 달쯤.
밥을 먹으면서 틈틈히 자기 애완(?)이 된 동물들의 먹이도 챙기고 있는 중에 안나에게 물었다.
"고아원에서 왜 도망쳤니?"
작은 가죽 가방마다 정리해서 음식을 싸매고 있는 안나는 나를 흘기며 천연덕스러웠다.
"마녀님을 만나려고요."
이것 봐라? 고민도 없이 능청스래 툭 튀어나오는 그 정도 대답은 이미 예상했었다.
안나는 충분히 그런 똑 부러지다 못해 부숴뜨리는 타입이니까.
특히나 대부분을 여우 같은 웃음으로 무마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 통해.
"능청 떨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 안 그러면." 나는 손을 툭 튕겼다. 안나의 주변에 차가운 한기가 서리자 안나는 그제야 하는 일을 멈췄다. "너 같은 꼬맹이는 한 번에 얼려버리는 수가 있어."
허공에서 빙빙 도는 내 마법이 안나의 턱 끝을 잡아당겨 올린다.
안나는 입을 샐쭉이면서 처음으로 난감하다는 모습이다 입을 뗐다.
"마녀님이 보고 싶어서요."
"능청 떨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라 했지?"
"진짜에요! 진짜로...도는 소문에 이 숲 어딘가 있는 오두막이 마녀님 집이라고...그렇게 들어서...고아원에서 살기보다 마녀님이 낫겠다 싶어서 그랬어...요. 거기는 무서워요. 가끔씩 오는 아저씨들이 자꾸만 언니 오빠들을 데리고 나가요. 듣기로는 그렇게 끌려가면 오빠들은 뱃사람이나 고된 일을 하는 직공장으로 가고, 언니들은 풍속점의 허드렛일로. 그런 위험한 곳으로 간다고 그래요. 다음이나 그 다음이 제 차례가 될거라 생각하니까 무서워서...그래서 차라리 숲으로 도망가는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무섭지가 않고? 사람을 잡아먹는 마녀인데."
"마녀님을 설득하면 될거라 생각했...어요."
안나는 엘사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면서 손가락부터 발가락까지 전부 꼼지락거리고 어깨는 추욱 늘어졌다.
"어떻게 설득할 생각이었어?"
"요리도 하고, 청소나 빨래도 하고, 뭐든지 다 한다고요. 지금처럼. 거기다가 양을 잡아 털을 깎거나 고기를 먹어도 다 큰 양을 먹잖아요. 저는 아직 어리니까..."
기가 차서 어이가 없었다.
나는 안나 주변을 맴도는 마법을 거두었지만 안나는 여전히 눈치를 보느라 손을 꼼지락대고 있었다.
인간을 잡아먹는다고? 그런 야만적인 소문은 어디서 났는지.
그보다 자기는 어리니까 잡아먹지 않는다는 배짱도 대단하다.
"마녀님 절 버리실건가요?"
안나는 가죽 가방을 풀러서 공손하게 내려놓고는 우중충한 얼굴로 눈동자만 까닥여 나를 바라봤다. 인간 여자아이라니...
어차피 인간들은 몇 년만 있어도 금방 어른이 되고 제 앞가림을 할태지.
떄가 되면 다시 인간 마을 어딘가로 내쫓으면 될거고 그게 아니라도 언젠가 이 숲이 답답해서 견디다 못해 나갈태다.
"그럴려면 진작에 숲 깊숙한 호랑이 굴에 던져버렸지."
안나의 얼굴에 금방 화색이 돌았다.
"그, 그럼 계속 마녀님의 집에서 지내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우울함을 금방 가신 안나는 먹던 식사를 깔끔하게 입에 털어놓고는 가방도 다시 고쳐맸다.
"설거지는 다녀와서 할게요! 저녁도 준비하면서요!"
뭐야? 마치 알고 있었다는 투잖아?
맹랑한 기집! 인간 여자들은 마녀보다 더 교활한 면이 있다. 아주 태고적부터 마녀들의 가르침을 받은 기억이 새겨져 그런가.
마녀보다 더한 마녀들이 인간 여자들이다.
나는 뭔가 속았다는 느낌이 가득했지만 마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똑똑한 골렘을 만들었다는 셈 치기로 할까.
그 정도 이상으로 크게 여기지는 않았다.
"마녀님, 마녀님!"
"뭐니 꼬맹아."
"꼬맹이 아니고 안나에요!"
"안나가 아니고 꼬맹이야."
"이제 10살이에요!"
"그걸 꼬맹이라고 불러. 인간들 기준에서도. 그리고 아무리 재촉해도 마법은 안돼."
안나는 해맑은척 다가왔다가 금새 풀이 죽었다. 안나는 내 서재에서 읽을 책이 더 없었다.
그 대신에 곧잘 내 마법에 흥미를 보였다. 마도서를 읽고 싶어하는 욕구가 가득해 보였지만 절대 안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면 마녀님의 조수는 어떨까요? 필요하신 재료들을 준비만 할게요!"
"안돼."
"약초라도 캐올까요? 공부 많이 했어요! 게라르도의 채집록을 전부 외웠거든요. 켈퍼나, 그레이스의 약초학서도요!"
가가구구 이해도 못하고 있던 꼬맹이는 몇 년 사이에 정교한 학서들도 읽고 있다.
배움이 빠른게 흥미로와서 조금 알려줬더니 기고만장해져있다.
"10살짜리가 뭘 안다고."
"적어도 마녀님이 부리는 마법들은 알고 있죠."
"하아아, 꼬맹이랑 놀아줄 시간이 없어."
"그럴줄 알고 제 능력을 보여드리기 위해 제가 하나 만들어 봤어요!"
안나는 어깨를 피고 기세등등하게 대뜸 노란색의 형광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 하나를 들이밀었다.
나는 한 눈에 그것이 '유포리아' 일명 행복감의 묘약임을 알았고 딱 알맞게 제조된 최상의 상태도 알아차렸다.
그런데 나에게 드는 위화감은 고작 10살짜리가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완벽한 재료 배합이었기에 그렇다.
나는 플라스크에 닫힌 코르크 마개를 열어 살짝만 냄새를 맡아봤다. 강렬한 향기.
그 잠깐 사이에 나는 행복한 감정이 드는 '착각'을 재빨리 벗어나 코르크를 닫으며 콧가에 남은 향을 휘휘 저어 내쫓았다.
당황스럽다.
단 몇초사이지만 저 묘약을 마시고 싶다며 취한 내가 당황스러웠다! 이걸 만든게 안나라는 것도!
"일명 행복의 묘약이죠. 마녀님은 너무 무표정하시고 삶이 지루하신거 같아서 제가 특별히 만들어 봤어요. 박하 가지의 껍질을 넣으라고 되어 있는데 아예 박하를 으깨서 섞어 봤더니 훨씬 더 효과적일거 같지 않나요?"
"너..."
나는 더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안나에게서 행복의 묘약을 뺏은 나는 안나가 만든 묘약을 얼른 마법 재료들을 폐기하는 끓는 솥단지에 부어버렸다.
화악 불꽃이 튀어오르자 안나는 화들짝 놀라면서도 뭔가 잘못했다는 직감으로 두 손을 모아 움츠렀고 나는 그런 안나를 무시무시하게 노려봤다.
"이 재료들을 어떻게 구했어."
"제, 제가 채집했어요. 숲 깊이 다니면서. 일부는 오두막 뒤편에 있기도 했고요."
"그러다 길을 잃으면 어쩌려고?"
"길은 피터나 릴리가 알려줘요. 항상 남쪽 방향이 마녀님의 집이니까요."
"그 앵무새랑 토끼?"
"말고도 숲에 사는 동물들 소리가 들려요. 위험한 일이 생기면 미리 알아서 피하고요...시간이 늦어지기 전엔 돌아오게 알려주기도 하고요. 돌아올 때는 길을 잃지 않게 옆에 붙어서 같이 가줘요. 물론 잘했다는건 아니에요."
"저런 묘약을 쓰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어?"
"어떻게 되다니요?"
"묘약은 아주 잠깐 착각이야. 사실 사람을 서서히 죽여가는 마약의 일종이지. 묘약의 힘을 체험하다 보면 계속해서 모든 걸 거기에 맡기게 되고 몸에는 점점 내성이 쌓여서 더 극악한 약을 써야 해. 최후에는 자기가 죽는지도 모르고 약을 찾아 해매다 끝장나지. 그래서 마녀들은 절대 자신한테 묘약을 쓰지 않아. 하긴 너 같은 꼬맹이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도 않았겠지?"
"저는 단지 마녀님이 행복하..."
"토 달지 말고 들어! 어른이 말하잖아! 별것도 아닌 약초학서들을 본다고 만들 수 있는게 아니야. 나 없을 때 내가 읽지 말라고 한 금서들을 읽었지?"
"아니요! 정말로 저는 읽으라고 하신 것들만 읽었어요."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였다.
말하나 마나, 자리를 비울 때 이따금 안나가 마도서나 마녀들의 금서를 몰래 몰래 보고 있는 정도는 훤히 알고 있었다.
안나의 가방을 뒤집어 탈탈 털어내면 받아 적은 금서들의 내용이 적힌 양피지가 몇 장이나 들어 있을거다.
"다시는 허락 없이 마법에 손대지마! 다시는!"
"죄송해요...저는 정말로 마녀님이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누가 누굴 걱정해! 이 숲속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아? 앵무새나 토끼 따위가 널 지켜줄 수 있을거 같고?"
"아니요..."
"그럼 내가 램프의 지니처럼 갑자기 튀어나와서 널 지켜줄 수 있을까?"
"아니요..."
별 소리 안하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흥분되지.
나는 도저히 통제불가능한 이 꼬맹이에게 넌덜머리가 났다.
사실 안나가 읽지 말라고 한 금서를 읽어서라던가 숲 깊은 곳을 멋대로 다녀서가 아니였다.
유능한 마녀인 내가 냄새만 맡고도 현혹되는 감각을 느꼈을 정도로 깜작 놀랄 완성도를, 인간 여자애가.
그것도 10살짜리가 책 몇 번 뒤적인걸로 단번에 성공했다는 그 위험한 재능 때문이었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안나는 계속해서 사고를 칠 것이다. 그게 인간이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직접 가르치자고 생각했다.
한참 말 없이 있다가 감정을 추스렀다. 나답지 않게 왜이러지.
"앞으로 내 서재에서 꺼내는 책들은 여기에서만 읽어. 내가 있는 동안."
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뭔가 흥미가 생기는게 있으면 반드시 나한테 물어보고 이 안에서만 행동해. 네 멋대로 실험하고 마법을 시도하는건 금지야. 절대로!"
안나는 의기소침한채 슬며시 나를 올려다봤다.
"묘약을 만들 때는 반드시 제조 방식을 따라. 안 그러면 약효가 달라져서 올바르게 처방해 쓸 수 없어. 이게 첫번째로 알려주는거야."
내 허락이 떨어지자 안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나 내 마음이 변할까 재빨리 내 기분을 맞춰서 책들을 정리하더니 사실은 만들어본 묘약이 더 있다고 고백한다.
그럴줄 알았지. 나는 그것들도 몽땅 가져와서 솥단지에 부으라고 일렀다.
위험천만한 재능이 답답한 육체에 갇혀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사실 이때까지도 나도 그 문제에 대해 자세히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또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도 나는 잘 모르고 있었다.
엄연히 나는 마녀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