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업/수정] 하수구의 뱀과 거리의 개 1, 2.
본 시리즈는 강압적이고 소재에 호불호가 있으며 도구사용으로 주의가 필요함.
하수구의 뱀과 거리의 개.
“아. 일어났어? 안녕, 예쁜 언니.”
4년 차 형사인 엘사 아렌델이 눈을 떴을 때, 보게 된 것은 낯선 공간이었다. 엘사는 자신의 몸이 단단히 결박되어 있음을 눈치채고 먹힐 리 없는 몸부림을 치지는 않았다.
손목은 팔꿈치까지 단단히 묶여 어떤 재주로도 풀 수 없었고, 두 무릎과 발목 또한 서로 붙어있는 채로 결박되어 엘사의 몸은 침대 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입 안으로는 재갈이 묶여있는지 고무 재질의 재갈이 입 안을 가득 채우고 있어 혓바닥조차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엘사는 혓바닥을 넘어 목구멍 가까이 가득 채워진 재갈에 구역질이 나지 않도록 숨을 고르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대답은 안 해도 돼. 이해할게. 스토커 언니. 내가 워낙 예뻐야 말이지. 익숙해, 이런 과한 애정. 집착…. 언니, 나 좋아하지?”
약을 올리듯 빈정대는 목소리는 낯선 것이었다. 엘사는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엘사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있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분명 엘사가 조사하던 용의자였다.
허벅지에 뱀 문신을 한 여자, 안나. 성은 망고베어, 원더그린, 미네먼, 페릭, 또 뭐더라…. 아, 그래. 체드너. 조사할 때마다 나오는 그녀의 성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이름은 늘 안나였기에, 엘사와 동료들은 그녀를 안나라고 불렀다.
“언니, 공무원이네? 좋겠다.”
안나는 지갑을 손에 쥐고 그 안에 있는 신분증을 보고 있었다. 지갑은 엘사의 것이었다. 엘사는 추적하던 용의자에게 붙잡힌 것도 모자라 자신의 신분이 다 탄로 났다는 것에 절망했다.
안일한 행동의 결과다. 퇴근길에 우연히 안나를 발견했을 때, 흥분하여 무작정 안나를 쫓아간 것이 화근이었다. 친한 동료에게 문자메시지 하나만 보내둔 채로, 안나를 놓칠까 서두른 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총기라도 휴대했다면 안나의 손에 들린 것은 지갑이 아닌 엘사의 총이었을 테다.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분명 보통 징계로 끝날 일은 아닐 것이다.
“공무원이 스토킹 같은 걸 해도 되나? 언니 얼굴이면 좋다는 남자 많을 것 같은데, 굳이 나를? 왜?”
탁. 소리 나게 지갑을 닫은 안나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엘사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웃고 있던 입꼬리와 어울리지 않는 눈빛이다. 범죄자의 눈빛. 저런 눈을 한 사람들은 남을 다치게 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주로 경범죄자나 초범보다는 연속범죄자, 그리고 살인자에게서 보던 눈빛이다. 엘사는 지지 않겠다는 오기로 안나를 마주했다. 재갈이 없었다면 뭐라도 소리쳤을 것이다.
“사실. 이유 같은 건 궁금하지 않아. 내가 워낙 양심적이라 찔리는 일이 많아서 말이지.”
엘사는 안나의 얼굴이 사진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웃고 있어서 그런가? 하여튼 살아 돌아간다면 몽타주부터 바꿔야 할 판이다. 안나의 얼굴은 여전히 웃는 모습이었지만,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참 재밌어.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야. 예쁜 언니가 따라오길래 번호나 주려고 했는데, 날 잡겠다고 설치는 똥개였다니.”
안나는 지갑을 흔들며 엘사를 바라보았다. 가죽 지갑이 안나의 무릎에 반복적으로 부딪히며 일정하게 소리를 낸다.
“똥개는 도살하는 게 편한데…. 언니도 알지? 개장수한테 잡혀가는 거, 재밌는데. 본적 없어?”
엘사는 안나의 말에 불쾌감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재갈이 물린 채 침만 흘리는 입으로는 할 수 없었기에 그저 노려만 보았다. 안나는 그런 반응이 즐겁다는 듯 웃었다. 안나는 지갑을 휙 던져버렸다.
“떠나기 전에 뭐라도 조져두고 가려고 했거든.”
엘사가 누워있는 침대로 안나가 뛰어들었다. 엘사의 옆에 몸을 던진 안나 때문에 침대가 출렁인다. 안나는 두 손으로 엘사의 턱과 목을 붙잡고 엘사를 내려다보았다.
“마지막으로, 감히 날 잡으려고 했던 멍청이들을.”
안나의 손이 엘사의 목을 졸랐다. 엘사는 안나의 악력이 센 편임을 몸으로 느꼈다. 안나의 초록 눈동자가 그림자 아래로 들어갔지만, 엘사는 여전히 그 눈동자가 선명히 보였다.
숨이 막힌 엘사가 본능적으로 몸부림쳤다. 재갈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다. 반사적으로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 그런데, 왜 이렇게 내 취향인 거야?”
안나가 손에 힘을 풀자 본능적으로 숨을 급히 들이마셨다. 재갈을 문 채로 콜록대며 구역질을 느끼던 엘사는 자신의 턱을 쓸어내리는 손을 느꼈다. 안나가 몸을 점점 가까이 붙였다. 엘사의 위로 몸을 포갠 안나는 침대에 누워 엘사를 끌어안았다. 안나의 오른손이 엘사의 뒤통수를 감싸고, 왼손은 등을 지나 점점 아래로 향했다.
“따먹고 싶어서 죽이지도 못했잖아. 하…. 언니. 엉덩이 탄력 봐. 미치겠다. 이래서 외근직 여자가 좋다니까?”
안나의 왼손이 어느새 엘사의 바지를 파고들어 속옷 안으로 들어갔다. 엘사는 안나의 손이 평소 드러내지도 않던 은밀한 곳에 닿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안나의 다리가 엘사를 속박하며 엘사의 위로 올라탔다.
엘사가 몸을 비틀며 저항해보지만, 이미 속박된 몸으로는 의미 없는 저항이었다. 엘사의 어깨를 누르고 바라보던 안나의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그녀는 가늘어진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흣…. 언니. 더 격하게 움직여볼래? 하, 나 지금 되게 기분 좋아지고 있거든?”
엘사는 안나의 음부가 자신의 몸에 밀착되었음을 눈치챘다. 자신의 저항이 저 여자의 쾌락거리가 됨을 눈치챈 엘사는 수치스러움과 짜증을 느끼고 행동을 멈추었다. 안나는 상관없다는 듯 엘사의 배 위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며 스스로 아래를 압박하며 즐겼다.
안나의 자위는 오래가지 않았다. 안나의 손이 움직여 엘사의 옷깃을 붙잡았다. 멱살을 잡힌 엘사는 그 손에 몸이 끌려갔다. 엘사는 안나의 힘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말로 거부할 수 있다면 거부할 것이고, 발로 밀어낼 수 있다면 밀어낼 것이다. 하지만 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가능한 저항은 팔을 휘두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쯧, 하고 혀를 찬 안나가 다른 끈을 가져와 침대 헤드에 묶여버리자 불가능해졌다.
“자, 예쁜 언니. 즐거운 섹스 시간이에요. 얌전히 있자?”
안나는 엘사의 팔을 묶고 다시 다리 위로 올라탔다. 셔츠를 잡아당겨 단추를 뜯자, 벌어진 사이로 엘사의 몸이 드러났다.
“꺄, 언니. 엄청 크네? 예쁘다.”
안나가 엘사의 브래지어를 위로 올리자 젖가슴이 출렁이며 떨어졌다. 안나는 옆으로 흘러내린 젖가슴을 쥐고 다른 한쪽을 입에 넣어 핥았다. 젖먹이처럼 쪽쪽 거리는 안나의 행동에 엘사는 당황했다. 미친 여자 아닌가? 미친 여자의 혓바닥과 입 안쪽이 피부로 느껴졌다.
안나의 손가락이 쥐고 있던 가슴의 유두를 자극했고, 엘사는 몸에서 느껴지는 간질하고 야릇한 솔직한 욕망에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이내 재갈이 물린 입에서 ‘윽’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안나가 엘사의 젖가슴을 세게 깨물었기 때문이다.
“뭐야. 왜 안나와? 기대했는데.”
엘사가 몸을 비틀며 고통을 표현했다. 안나가 물고 있던 피부 아래에서 피가 고인 듯 붉은 잇자국이 새겨진다. 엘사는 순간 살이 뜯어지는 느낌이었다. 뭐가 안 나온다는 거야. 우유라도 바란 건가? 엘사는 미친 여자에게 단단히 잘못 걸렸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실망이네. 그냥 바로 시작하자, 언니?”
안나는 엘사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엘사가 몸을 비틀며 저항해도 바지는 벗겨졌다. 공기가 맨살에 닿아 소름이 돋는다. 안나는 침대 한쪽에 미리 던져두었던 물건을 들었다. 성의 없는 버섯 모양과 비슷한 실리콘을 든 안나가 저항하는 엘사의 다리를 누르며 삽입할 곳을 바라보았다.
“핑크네. 귀엽게.”
안나의 짓궂은 행동에 엘사는 수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아무 생각할 수 없어졌다. 안나가 무작정 아래를 비집고 손가락을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엘사는 자위해본 경험뿐이었다. 엘사가 성인물에서 보아온 것과 달리 고통이 느껴졌다. 마찰 때문인지 아니면 거친 손가락 때문인지 아래가 뜨겁게 아렸다. 안나는 엘사의 반응을 보고 그녀가 경험이 없음을 눈치챘다.
“처음인가 봐? 영광이네. 예쁜 언니라 헤픈 줄 알았는데. 가슴으로도 쉽게 느꼈고.”
안나는 엘사의 안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며 말했다. 엘사는 몸에 힘을 주며 긴장했다.
“존나 조이네. 그럼 힘든데…. ”
안나의 시선이 침대 한구석으로 향했다.
“흠, 언니. 젤이 없어도 젖어서 괜찮지? 아프면 참지 말고 소리 질러, 언니.”
안나가 움직이자 엘사의 아래에서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이내 다른 것이 엘사의 안으로 들어온다. 엘사는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고통을 느꼈다. 온통 아프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아!”
“이런, 많이 아파?”
안나는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엘사의 아래를 벌렸다. 그러나 손은 전혀 미안하지 않은 태도로 부풀어 오른 돌기를 거칠게 자극했다.
“이러면 좀 어때?”
“아!”
안나의 지분거림에 엘사의 허리가 비틀어진다. 안나는 재밌다는 듯 지분거리는 엄지손가락을 멈추지 않고, 엘사의 아래에 삽입한 것을 비틀었다. 살짝 빼내었다가 다시 안으로 집어넣음을 반복하던 안나는 완전히 엘사의 아래를 자극하는 것에 집중했다. 엘사는 재갈이 채워져 신음을 참지 못했고, 방 안은 엘사의 숨소리와 그 사이를 채우는 신음으로 채워졌다.
“하핫, 언니. 지금 피난다?”
엘사의 신음이 헐떡임으로 변하자, 안나는 기구를 흔들며 엘사를 바라보았다. 엘사는 고통 사이에서 확실히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살을 파고드는 사이사이 안나의 손가락 덕분에 클리토리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쾌감이 고통마저 쾌감의 일부로 만들었다. 안나는 손가락을 세게 움직이며 엘사의 절정을 재촉했다.
“아!”
엘사는 짧은 신음과 함께 몸을 떨었다. 타인의 손으로 느낀 첫 절정이었다. 엘사는 아래가 화끈거리고 뜨거웠다. 이미 안을 비집고 삽입된 것을 물고 쿵쿵거리는 여운이 느껴졌다.
안나는 엘사의 아래에서 기구를 꺼내었다. 체액이 길게 늘어지자 안나는 그것을 엘사의 가슴에 문질렀다. 아래로 내려간 손이 엘사의 배를 꾹 눌렀다. 빠져나갔음에도 엘사의 아래에선 박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기분 좋았어? 지금 존나 벌렁거리는데.”
안나의 손가락이 엘사의 구멍을 훑었다.
“봐봐. 언니가 처녀였다는 증거.”
안나가 애액으로 젖은 손가락을 엘사의 눈앞으로 가져다 대며 빈정거렸다. 엘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럴 정신이 아니었다. 안나는 상관없다는 태도로, 오히려 즐겁다는 듯이 엘사의 턱을 잡고 보여주었던 손가락을 엘사의 입 안으로 쑤셔 넣었다.
“자, 맛은 어때?”
안나의 손이 엘사의 입 안을 훑었고, 즐겁다는 듯이 웃는 안나의 웃음이 엘사의 귀를 채웠다. 멋대로 손을 빼내 엘사의 가슴에 침을 닦은 안나는 몸을 움직여 옷을 벗고는 침대 밖으로 던졌다. 알몸이 된 안나가 엘사의 허벅지에 몸을 비비자 안나의 애액이 묻어난다.
“처음 느낀 절정은 어땠어? 난 좀 꼴리던데.”
안나는 체중을 실어 엘사의 허벅지로 자위하며 그녀의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안나는 엘사에게 물려둔 재갈과 연결된 끈을 풀었다.
엘사는 드디어 느껴지는 해방감에 헛구역질하며 침을 흘렸다. 그러다 안나가 재갈을 허리춤에서 만지작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쏘아붙였다.
“이런 시발…. 미친년.”
엘사의 입에 물려있던 재갈은 스트랩온, 허리에 차는 딜도였다. 아까 엘사의 아래에 들어와 침대 한쪽에 내동댕이쳐진 것보다 작지만 좀 더 성의 있는 모양이었다.
이 미친년이. 사람 입에 그런 걸 넣어? 엘사는 진심으로 안나가 또라이라고 생각했다. 좀 더 욕을 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공기에 기침하느냐 정신이 없었다.
“벌써 애칭으로 불러주는 거야? 꺄. 감동이야. 감동감동~.”
안나는 엘사의 분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엘사의 몸을 붙잡았다.
“그러면 언니, 이번엔 진짜 아플 수도 있어. 나도 즐길 거거든?”
안나는 엘사의 셔츠를 붙잡고 몸을 뒤집었다. 묶인 팔이 비틀리며 통증을 호소한다. 쾌락이 진정되자 엘사의 몸 곳곳에서 뒤늦은 통증을 보냈다. 엘사는 침대에 얼굴을 묻힌 채로 위로 치켜 올려진 자신의 엉덩이에서 안나의 손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안나가 어떤 행위를 할지도 직감했다.
꼬인 팔에서, 파묻힌 얼굴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안나의 힘에 눌린 몸을 뒤척이며 저항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아래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엘사의 입에 채워져 있던 재갈이 안나의 허리춤에 매달려 안으로 모습을 숨겼다. 여운으로 두근거리던 느낌이 뜨거운 통증으로 바뀌어 엘사는 숨을 들이켰다.
“젖어서 아까보다 좋지?”
짝. 안나의 손이 엘사의 엉덩이를 세게 내려쳤다. 엘사의 신경이 순식간에 엉덩이로 집중되었다. 반사적으로 아래에 힘이 들어갔다. 재갈이 허리의 움직임에 따라 엘사의 안팎을 오갔다.
안나가 엘사의 엉덩이를 몇 번 더 내려쳤고, 그때마다 엘사는 아래를 강하게 조였다. 그 덕분에 안나의 허리가 움직이며 빠져나갔다 파고드는 이물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엘사는 입을 막는 구속이 사라졌음에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처박힌 얼굴 때문에, 아래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쾌락 때문에 침대에 엎드려 신음만 내기에도 벅찼다.
안나는 엘사의 허리를 붙잡고 허리를 움직이다가 몸을 굽혀 엘사의 배를 주물렀다. 다른 손을 더 아래로 내려 구멍 아래 돌기를 자극한다. 아까보다 강한 쾌락을 느끼는 엘사는 허리를 비틀며 신음을 내질렀다.
끝을 모르게 점점 강해지는 쾌락의 끝, 엘사가 절정을 느꼈음에도 안나는 멈추지 않았다. 절정을 느끼며 욕지거리조차 내뱉지 못하고 파들거리던 엘사는 다시 안나의 손에 몸을 뒤집혀 얼굴을 마주한 채로 다시 그녀를 받아들여야 했다.
허리가 더는 안 된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안나는 멈추지 않았다. 엘사는 다시 한번 절정을 느꼈다. 세 번째였다. 엘사는 자신이 침대 위에서 실금했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했다. 오늘, 난생처음으로 타인과 정사를 맺고 연속으로 절정을 느낀 엘사의 귀에는 삐- 하는 이명이 가득했다.
“하, 언니, 그렇게 좋아?”
안나는 엘사의 실금에 큭큭대며 놀렸지만, 엘사는 여운에 묻혀 인지하지 못했다. 엘사는 두 눈이 풀린 채로 입 주변이 침으로 번들거렸다.
안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칼을 가져와 엘사의 다리를 결박한 끈을 잘라내었다. 그리고 엘사의 두 다리를 벌려 한쪽을 자신의 몸에 걸치며 벌려진 틈새에 손가락을 삽입했다. 그때까지 늘어져 있던 엘사가 움찔거리며 반응한다.
안나는 엘사의 입에 입을 맞췄다. 손가락을 움직이자 반사적으로 헐떡이려 열린 입술 사이로 혀를 집어넣으며 그 안을 훑었다. 엘사는 숨이 막혔지만, 눈앞에 있는 안나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귀에선 이명이 시끄러웠고, 눈꺼풀이 무거웠다.
그것이 엘사의 마지막 기억이다.
엘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안나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몸을 일으킨 엘사는 허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얼굴을 찌푸렸다. 베개 옆에는 쪽지와 폴라로이드 사진이 흩어져 있었다.
엘사는 잠든 자신의 모습과 활짝 웃는 안나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았다. 다른 사진을 확인하니 볼에 입맞춤하는 사진과 옆에 누워 손깍지를 하고 찍은 사진이다. 누가 봐도 연인 사이 같은 다정한 모습이다. 엘사는 사진을 섣불리 공개할 수도 없는 상황에 욕지거릴 내뱉으며 마지막으로 남은 쪽지를 집어 펼쳤다.
‘다음에 또 봐. 예쁜 언니. -섹파’
엘사는 짜증스레 쪽지를 구겨 멀리 던져버렸다. 벽에 명중한 종이가 바닥을 굴렀다. 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온몸에서 근육통을 호소한다. 특히 아랫배가 아파 몸을 웅크리며 주저앉았다. 침대 옆 바닥에 놓인 종이상자를 발견했다. 확인해보니 옷과 속옷이었다.
‘진짜 변태 또라이 새낀가?’
엘사는 자신이 이상한 놈에게 단단히 잘못 걸렸음을 다시 한번 직감했다.
하수구의 뱀과 거리의 개, 뒷 이야기.
“엘사! 엘사 아렌델!”
엘사는 현관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무거운 머리가 피로가 풀리지 않은 몸을 더욱 짓누르는 기분이다. 시계를 보니 자신이 잠든지 세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다. 문밖의 여자는 기다림이라곤 없는지 쉴 새 없이 문을 두드린다.
참을성 없는 여자가 누군지 알고 있던 엘사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고 발을 휘적거리며 바닥에 벗어둔 슬리퍼를 찾았다. 하지만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걸리지 않는다. 결국 맨발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 앞에 슬리퍼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어제, 아니 아까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엘사는 현관 옆 탁자에 둔 외투와 사진들을 발견했다.
‘저 망할 사진.’
사진은 낚아채다시피 쥔 엘사는 신발장을 열고 보이는 운동화에 대충 쑤셔 넣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문을 두드리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여자를 멈추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일어났어. 파 형사. 문 부서지겠다.”
“있었으면 인기척이라도 내지 그랬어?”
엘사는 몸을 비틀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고갯짓을 했다. 그녀는 파 뮬란. 엘사의 동료이자 친구이다. 엘사는 그녀가 화가 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알고 있었다. 엘사는 이번엔 슬리퍼를 신고 뮬란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좋은 아침….”
“지금 장난해?! 열한시가 넘었어! 밤새 걱정시키더니, 갑자기 휴가를 쓰질 않나!”
“…핫초코 마실래?”
“그냥 물이나 줘. 아무튼 빨리 얘기나 해. 빨리.”
부엌으로 들어간 엘사는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하나 꺼내 뮬란에게 던졌다. 그리고 자신도 하나 꺼내 열고 물을 들이켰다.
“아, 빨리!”
거참 성격도 급하다. 엘사는 속으로 투덜댔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엘사가 속해있는 팀 사람들 전부 비슷한 성격들만 모였다. 엘사는 비어버린 병을 싱크대에 던져두고 새 물병을 하나 더 꺼내고 냉장고 문을 소리 나게 닫았다.
“그게, 안나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엘사는 안나와의 추억을 숨기기로 했다. 가능하다면 없던 사실로 해버리고 싶었다.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첫 경험이었다. 엘사는 스물아홉 평생 자신의 첫 경험이 원나잇, 그것도 일방적으로 당하는 그런 경험일 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다. 심지어 형사가 용의자에게 납치된 상황이니 더더욱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것이 대단할… 아니, 이건 아니다.
“그래서?”
“응?”
“그게 끝이야?”
뮬란의 눈썹이 한껏 치켜 올라있다. 엘사는 뮬란이 화를 내기 직전임을 눈치채고 빠르게 머리를 굴려 거짓말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아니, 들어봐! 뮬란! 화내지 마.”
“마지막이야. 나 밤새 너 찾아다녔어.”
“그건 좀 감동이네. 고마워. 내가….”
“마지막이랬다.”
엘사는 침을 꿀꺽 삼키고 변명을 시작했다.
“그게, 어제 안나인 줄 알고 따라가다가 시비가 붙었거든….”
엘사는 물병의 주둥이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시작했다. 어제 뮬란에게 문자를 보내고 적갈색 머리의 여자를 뒤따라가다가 그녀가 달려가길래 따라 달려갔다. 중간에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도움을 청했고, 결국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어 겨우 끝났다. 그러나 돌아오면서 계단에서 굴렀고, 그 때문에 핸드폰이 박살 났다는 이야기다.
“진짜야?”
“맹세코.”
“핸드폰은?”
엘사는 두리번거리다가 소파 옆에 던져뒀던 핸드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화면엔 금이 갔고, 배터리는 방전되어 켜지지 않는다. 망가졌다고 둘러대기에 완벽했다. 엘사는 아예 못을 박기 위해 이 엉망진창인 기계를 뮬란에게 건넸다. 뮬란은 그것을 받아들지 않은 채로 엘사를 노려보았다.
“사무실에 연락은 어떻게 했어?”
엘사의 손가락이 이번엔 전화기를 가리켰다. 인터넷과 함께 설치한 것으로 전화로 사용한 적은 없지만, 오늘 정말 유용하게 쓰인다. 뮬란의 표정이 조금 풀린 것을 확인하고 엘사는 마무리를 날렸다.
“미안해.”
“출근하면 커피. 열 번이다.”
“생크림 가득 올린 걸로.”
“오케이. 그리고 너, 사유서 써서 줘.”
“뭐?”
“어제 나 당직이었어. 네 연락 받고 찾는다고 팀장님이 대신 근무 섰으니까 사유서 써놔. 내부 결재라도 해놔야 해.”
“후….”
엘사는 한숨을 쉬고 다시 물을 마셨다.
“양식 가지고 있지? 오늘 써서 내 메일로 보내놔. 안 그러면 커피 백 잔으로도 안 풀려. 알겠어?”
“알았어. 약속할게.”
“몸은 어때? 많이 다쳤어?”
“아니. 죽을 거 같아.”
“그래 보이네. 어디 부러지진 않았어?”
뮬란이 자신의 목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말한다. 엘사는 주변에 있는 손거울을 들고 자신의 목을 비춰보았다. 흰 목에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분명 안나가 목을 쥔 탓일 거다. 손자국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응. 타박상만 좀 있는 거 같아.”
“뇌진탕 증상은?”
“없어. 멀쩡해.”
“약 바르는 것 좀 도와줄까? 약상자 어디 있어?”
“아, 아냐. 괜찮아. 뜨거운 물에 몸이나 좀 씻으려고.”
“그래. 그럼.”
뮬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반이 넘게 남은 생수병을 챙긴 뮬란이 자신을 따라 일어난 엘사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오늘은 푹 쉬어. 내일 두고 보자고.”
“응. 고마워.”
“커피 열 잔.”
“하하하.”
“간다.”
뮬란을 배웅하고 현관문을 잠갔다. 엘사는 다시 잠들고 싶었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이 생겼으니 그것을 먼저 끝내고 싶었다. 그 전에 먼저 핸드폰부터 켜봐야지. 사무실에 전화가 걸린 것은 기억나지만 다시 작동될까 걱정되었다. 3년 넘게 쓴 고물이라 바꿀 때가 되었지만, 이 안에 저장된 사진과 전화번호 같은 것들이 신경 쓰였다. 백업을 해두었다고는 해도 마지막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했다. 어떻게든 저 전화를 살리긴 해야 했다.
엘사는 충전선을 연결하고 화면이 켜지는 것을 확인했다. 다행이다. 이따가 나가서 새 핸드폰이나 사야겠다. 엘사는 핸드폰이 충전되게 내버려 두고 노트북을 꺼내 소파에 앉았다. 서류 양식을 모아둔 폴더를 찾아 사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모월 모일 18시 30분경, *사건 및 #사건 관련 용의자로 의심되는 용의자를 발견하여….
다음날, 엘사는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것을 느끼고 출근 준비를 했다. 화장실 조명에 비친 몸에는 군데군데, 특히 팔과 다리에 멍 자국이 들긴 했지만, 긴 소매 옷과 바지로 충분히 가려질 만한 위치였다.
엘사는 거울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자국을 따라 되짚어보면 어떻게 묶였는지 가늠이 되었다. 팔목에 남은 자국을 만지작거리며 그 길을 따라 거울에 비춰 바라보았다. 엘사는 아래가 움찔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괜히 손으로 틈새를 가볍게 훑었다가 후회했다. 어제의 기억이 강렬하게 몸에 남은 기분이 들었다.
‘뭐 하는 짓이야. 엘사. 정신 차려.’
엘사는 세면대의 물을 틀어 손을 씻고 세수를 했다. 수건에 머리를 묻고 세게 비비며 밖으로 나왔다.
출근하기 전, 카페에서 생크림을 얹은 커피와 샷 추가한 커피를 구매했다. 아직 출근하지 않은 것인지 빈 뮬란의 자리에 약속했던 올려두고 옆에 있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업무 파일이 몇 개 올려져 있었다. PC를 켜고 쌓여있는 파일을 한꺼번에 뒤집어 맨 아래에 있었던 파일 먼저 확인하였다.
“좋은 아침. 몸은 괜찮고?”
“하루 쉬니까 좀 낫네요. 팀장님은요?”
“나도 쉬고 싶다. 커피 타임?”
엘사는 책상에 두었던 자신의 커피를 흔들며 보여주었고, 팀장은 “오케이.”라고 짧게 대답하며 탕비실로 들어갔다. 엘사는 커피를 마시며 책상 위에 놓여있던 파일을 확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근한 뮬란이 옆자리에 앉으며 커피를 확인한다.
“좋아. 좋은 아침.”
“뭐가 좀 많은 아침.”
“아, 그러게. 어제 인기 많던데. 사유서는? 다 썼어?”
“응. 어제 보냈는데.”
“그래? 못 봤는데….”
뮬란이 자신의 PC를 켰다. 엘사는 보내놓은 것이 확실하지만, 혹시나 메일이 발송 오류라도 났나 싶어 메일함을 확인해보았다.
“아, 있네. 오케이.”
엘사는 웃음으로 대답하고 화면을 확인했다. 엘사의 메일함에 어느 메일이 하나 도착해 있었다. 어제 메일함을 확인했을 때는 없던 것이었다.
[♡]
엘사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수신 시간을 확인하니 오늘 새벽이다. 엘사는 메일을 보낸 것이 안나라고 확신했다. 단지 추측이지만 확실하게 안나일것이다. 엘사는 바로 메일을 휴지통으로 옮기고 메일을 차단했다.
“엘사, 이대로 팀장님한테 보고드리고 올게.”
“아, 응. 알았어.”
“무슨 일 있어?”
“응? 아니. 왜?”
“표정이 좀 그래 보였어. …무슨 일 있는 거면 말해. 커피 한잔하러 갈까?”
“하하. 없어. 진짜로. 괜찮아.”
엘사는 아까 사 온 커피를 들고 한입 마시며 표정을 정리했다.
‘티 나려나?’
엘사는 컵을 내려두고 파일을 차례대로 확인했다. 대부분 보고했던 사건들의 검토 결과였기에 중요한 내용은 없었다. 엘사는 가장 늦게 받은 파일이자 마지막 파일을 펼쳐 확인했다. 복사된 공문과 함께 지시사항이 적혀 있었다.
[사건 담당 변경으로 인한 서류 이관 및 인수인계 요청]
변경되는 사건은 안나와 관련된 사건이었다. 사건 담당이 중앙청 특수범죄수사과로 이관된다는 내용이다. 사유는 따로 쓰여있지 않았다. 대개 이런 경우는 용의자가 무언가 더 저질렀거나, 중앙청에서 담당할 만큼의 사건에 연계되었다는 의미이다.
엘사는 한숨과 함께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상사의 사무실로 달려가 따지거나 화를 내는 일은 없었다. 어차피 이미 정해진 일이었고, 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엘사는 의미 없는 일로 힘 빼기 싫었다.
서류를 덮어두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생각하던 엘사는 가장 먼저 안나의 자료나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사건 관련 폴더를 열었다. 그리고 자료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이 정도는 넘겨줄 수 있어. …어디 잡아보라지.’
엘사는 자료를 인쇄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서류에 적힌 안나의 이름을 볼 때마다 ‘왜?’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들었지만, 해결될 일은 없을 것이다. 엘사도 분명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결국 엘사는 폴더를 USB에 따로 백업해두었다. 그리고 그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그날 오후, 안나와 관련된 자료를 가져가겠다는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서장과 동행한 세 명은 엘사의 컴퓨터를 확인한 뒤, 자료를 옮겨 담고 완벽히 삭제한 뒤에 떠났다. 무례한 일이지만 상부의 지시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엘사 아렌델 형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엘사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남자와 가볍게 악수를 했다.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엘사는 주머니 속의 USB를 만지작거렸다. 엘사는 그들이 건넸던 명함을 바라보다가 명함집에 넣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엘사는 안나를 생각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동안 엘사는 메일을 열어볼까 고민했지만, 늘 그 결정은 부결로 끝났다. 다만 엘사는 안나에게서 온 메일을 휴지통에서 일반 메일함으로 옮겨 두었다.
엘사가 미리보기로 확인했던 메일 내용은 첨부파일 하나가 전부였다. 확장자가 MP4임을 보면 영상일 것이다. 내려받아 확인해볼 생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엘사의 자제심이 클릭하려는 손가락을 멈추게 했다.
전에 뮬란에게 들킬까 봐 쑤셔 넣었던 사진을 신발장에서 꺼냈다. 테이블에 올려두자 매일 그것을 봐야 했다. 다시 신발장에, 적어도 서랍에 넣어 숨겨버리려고 했지만, 늘 직전에 그럴 마음이 사라졌다. 사진에는 안나가 활짝 웃고 있었다.
‘얼굴을 외워두려는 거야.’
자신에게 변명하며 엘사는 사진을 바라보았다. 안나의 옆에 잠든 자신의 모습이 무방비해 수치심이 든다. 그리고 동시에 엘사의 아래에서 야릇한 신호를 보냈다. 젠장. 엘사는 샤워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워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간 엘사가 물을 틀었다. 벽에 고정된 샤워기에서 나온 차가운 물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엘사는 손으로 몸을 비비며 씻었다. 차가운 물이 닿아 둔해진 몸을 손이 따뜻하게 지나가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엘사는 샤워기를 닫고 배수구로 물이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벽에 머리를 박고 서서 상체를 감싸 안았다.
‘젠장.’
엘사는 어깨를 감싸 안은 팔에 닿은 자신의 유두가 빳빳이 서 있음을 느꼈다. 엘사는 안나를 생각하지 않겠다 노력하며 자신의 가슴을 쥐었다. 안나 때문이 아니다. 내려깐 시야에 들어온 발목엔 아직 옅게 멍이 남아 있었다.
‘아니야.’
엘사는 내려간 손이 아래를 지분거리려 움직이는 것을 막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다시 샤워기를 틀었다. 이번엔 뜨거운 물이 등 뒤로 쏟아졌다. 덕분에 온 신경이 뜨거운 피부로 쏠린다.
‘정신 차려.’
몸이 벌겋게 변할 정도로 뜨거운 물로 몸을 적신 엘사는 물기를 닦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이제 이틀간 휴일이다. 엘사는 소파에 앉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공을 응시했다. 아니,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생각들은 안나와 관련된 것이었다. 안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으며, 수사는 뺏겨버려 진행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엘사는 찬장에서 술병을 꺼냈다. 이사 선물로 받은 술이었다. 해외에서 60도 가까이나 되는 독주를 사 온 친구가 선물이라며 처치 곤란인 것을 떠넘긴 것이다. 갑자기 왜 생각났는지는 모르겠다. 냉장고에 있는 맥주로는 해소되지 않을 갈증 때문일까.
얼음을 채운 컵에 술을 따르자 알코올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병을 다시 집어넣다가 발견한 비스킷을 안주 삼아 먹어야겠다 싶어 챙겼다.
술은 냄새만큼 독했다. 비스킷은 안주의 역할보다는 명목상 놓여있을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술을 마셔야 하나? 얼음이 녹았음에도 술은 강하게 엘사의 속을 훑었고, 평소 맥주나 마시던 엘사는 머그컵 한 잔만 마셨음에도 금세 취기가 올라왔다. 내가 왜 이걸 마시고 있지? 엘사는 거의 비어버린 잔을 노려봤다. 강한 술 냄새가 목구멍 아래서 올라와 기도를 뜨겁게 달군다. 마치 차가운 불덩이를 삼킨 것 같다.
이게 다 안나 때문이다. 안나. 안나가 나를 묶고 내 아래를 거칠게…. 엘사의 아래가 달아오른 게 느껴진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엘사의 스물아홉 평생 그런 건 처음이었다. 몸 안에 들어온 것도, 그렇게 격렬하게 쑤셔진 것도. 전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처음은 너무나도 강렬하게 새겨졌다. 생각만 해도 아래가 달아올라 만져지길 요구했다.
컵을 내려놓고 한숨을 쉰 엘사의 눈에 아직도 화면이 꺼지지 않은 노트북이 눈에 들어왔다. 술에 취해 이성이 마비된 엘사는 그냥 함정을 밟아버리기로 했다. 술 때문에 결정된 충동적인 선택이다. 팔을 뻗어 마우스를 쥔 안나는 보낸 것이 분명한 그 메일을 열어 확인했다.
확인해봐야 안나가 맞는지 알 테고, 안나인지 확인이 된다면 분명 수사에 도움이 되리라. 그런 생각이었다. 엘사는 첨부된 파일을 내려받았다. 어차피 이제 수사권도 없는 엘사였지만, 엘사는 안나를 다시 만나고, 붙잡고 싶었다.
노트북의 화면이 순간 까매졌다가 다시 켜졌다. 엘사는 순간 고장이 난 걸까 걱정했지만, 다시 켜진 화면에 안도했다. 엘사는 영상을 재생했다.
어두운 화면이다. 손바닥에 가려졌던 것인지 손이 하나 멀어진다. 다시 잡힌 초점엔 안나의 얼굴이 한가운데 보였다. 안나는 화면을 보며 손가락으로 V를 표시하고 있었다. 사진으로 많이 보아서인지 익숙한 웃는 얼굴이다. 카메라 앞에서 끼를 부리던 안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익숙한 침대가 보였다. 엘사가 묶여있던 침대다.
사람 키보다 높은 위치에서 촬영한 듯한 화면은 침대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였다. 침대 위에는 엘사 자신이 정신을 잃고 누워있었다. 분명 그날의 영상이다. 엘사가 침을 삼켰다.
침대로 다가간 안나가 끈으로 엘사의 몸을 묶기 시작했다. 엘사의 이성은 그날의 수치심을 끄집어내며 이제 영상을 꺼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엘사는 노트북을 테이블에 내려두고 화면을 응시했다. 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목 뒤로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
안나가 어떤 약을 쓴 것인지 엘사는 안나의 손에 이리저리 뒤집혀도 깨어나지 않았다. 안나는 물건을 묶듯 다리로 꾹 누르며 끈을 잡아당겨 묶었다. 엘사는 자신을 묶었던 끈의 감촉을 떠올렸다.
화면 속의 안나는 묶인 엘사의 옷을 뒤져 지갑과 핸드폰을 찾아 꺼냈다. 출퇴근길에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는 엘사의 습관 때문에 가지고 있는 물건은 두 개가 전부였다.
안나는 엘사의 핸드폰을 만지다가 엘사의 손을 잡고 지문인식으로 잠금을 해제하려 했다. 하지만 엘사는 번호와 패턴으로만 잠금을 설정해놨기에 핸드폰의 잠금이 풀리지는 않았을 것다. 그러자 화가 난 것인지 안나가 엘사의 핸드폰을 바닥에 힘껏 던져버렸다.
“아!”
엘사가 놀라 소리쳤다. 액정이 나간 이유가, 핸드폰이 바닥에서 굴러다녔던 이유가 저거였구나. 뒤늦게 알았지만, 처음 안 사실이기에 화가 났다. 망할 새끼. 엘사는 안나를 욕하며 자신이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음을 알았다. 다시 소파에 기대어 앉으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엘사의 물건 탐색에 흥미를 잃은 안나가 누워있는 엘사의 가슴을 주무르며 희롱한다. 그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는 한동안 일어나지 않는다. 엘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눈을 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안나는 카메라를 쳐다보더니 옷 위로 엘사의 젖꼭지를 희롱했다.
안나의 성희롱에도 미동도 없는 엘사의 모습에 장난기가 돋은 것인지 앞에 놓인 엘사의 손을 붙잡아 입으로 물었다. 엘사의 손을 문 안나의 입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안나는 거의 엘사의 위에 올라탄 모습이었다
엘사는 아직 식지 않은 자신의 몸을 만져보았다. 손바닥 아래로 따뜻한 살결이 느껴졌다. 화면 속의 안나의 얼굴이 겨드랑이로 향했다가 다시 위로 올라갔다. 목 부분에 얼굴을 파묻던 안나가 고개를 들었다. 잡고 있던 손을 아무렇게나 던지듯 놓아버려 침대에 힘없이 떨어졌다.
잠시 화면 밖으로 사라진 안나가 양손에 하나씩 무언갈 들고 왔다. 엘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아래에 들어왔던 성인용품이었다. 엘사는 아래가 저릿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안나는 하나를 침대에 던져두고 남은 하나만 쥔 채로 엘사의 위에 올라탔다.
안나의 등에 가려진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분명 재갈이 아닌 것을 재갈로 사용하려는 모습일 것이다. 엘사는 그것이 목구멍을 막았을 때의 갑갑함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어 목 언저리에 손을 대었다. 우습게도 조금 달아올랐다.
준비를 마친 안나는 침대 옆에 둔 의자에 앉아 아까 꺼내두었던 엘사의 지갑을 살펴보았다. 현금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건들지는 않는다. 돈이 아쉽지는 않은가? 엘사는 안나의 행동과 방 구석구석을 관찰했다. 그리고 결박된 채로 묶여있는 자신의 모습도 보았다.
[아, 일어났어? 안녕, 예쁜 언니.]
그 뒤로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엘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엘사는 가라앉은 자신의 젖꼭지가 아까부터 단단해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아래에선 박동이 느껴질 정도로 달아올라 숨이 뜨거워졌다.
자세를 바로 앉아 화면을 바라보았다. 안나의 목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윗옷 속으로 손을 넣어 배를 문질렀다. 손바닥 아래로 따뜻한 살결이 느껴진다. 아까의 온기가 식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달아오른 것인지 몸은 솔직한 욕구를 분출했다.
화면에서 안나가 자신의 위에 올라타 엘사의 목을 조른다.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라 발끝이 뻣뻣해졌다. 엘사는 결국 바지 속으로 손을 넣었다. 속옷 안으로 들어간 손가락이 아까부터 만져지길 기다리던 돌기를 자극하자 온몸에서 기다렸다는 듯 쾌감이 느껴진다.
엘사는 몸을 비틀어 소파에 몸을 묻었다. 쿠션에 얼굴을 파묻고 손가락을 놀렸다. 어두운 시야 속에서 안나의 푸른 눈동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영상에서 나오는 자신의 숨소리가 더욱 자극을 부추긴다. 그 순간 아래에서 느껴지던 감각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찌릿한 자극이 중심에서부터 발끝으로 퍼져갔다. 엘사는 절정을 느꼈다. 안나 때문에 느낀 절정과는 다른 자극이지만 온몸의 힘이 풀리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엘사는 어깨로 몸을 지탱한 불편한 자세에서 일어나 다시 소파에 앉았다. 화면에선 아직 안나가 엘사의 아래를 탐하는 중이었다. 엘사는 여운이 남은 아래를 문지르며 다시 달아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재갈이 풀리자 자신의 신음이 비명처럼 높아졌다. 하지만 엘사가 기억하는 것은 쾌락이었다. 지금 느끼고 있는 것과 비슷하지만 분명 다른 기쁨. 그것은 무겁고 몸 안을 가득 채우는 고통이었지만 엘사가 받아들인 것은 분명한 환락이었다. 화면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와 소파 위의 엘사의 숨소리가 겹쳐 울린다.
엘사는 다시 한번 절정을 느꼈다. 빳빳이 굳은 다리 근육이 풀리며 몸이 소파에 묻히듯 두웠다. 지독한 자괴감이 느껴졌다. 성욕이 가시자 이성이 돌아왔다. 엘사는 스스로 목을 조르고 싶어졌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엘사.’
젖지 않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 머리카락을 넘겨버린 엘사가 한숨을 쉬었다. 화면을 보니 자신은 다시 기절해있고, 안나는 그런 엘사의 몸을 희롱하고 있었다. 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릴 때쯤, 화면이 분홍색으로 바뀌며 어느 글자가 나타났다. 도시 근교의 주소가 적힌 문구가 화면에 떴지만, 동영상이 멈추자 검은 화면으로 바뀌어버렸다. 그 때문에 엘사가 안나의 초대장을 발견한 것은 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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