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업] 레스토랑 서버 안나x싱어 엘사
겨울은 역시 재즈 아닐까... 브로드웨이의 레스토랑에서 재즈 싱어로 일하는 엘사와 거기서 서버로 일하는 배우 지망생 안나 보고 싶다
여기 싱어가 그렇게 유명하다던데 그렇게 유명하면 아예 음반도 내고 투어도 돌고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 왜 식당에서 월급 받으면서 노래하는 거지? 소문만 무성하지 실은 그냥 그럴 수도 있어... 라고 생각했는데, 서빙하다가 엘사의 목소리를 들은 첫 순간 그 자리에 굳어서는 반해버리는 그런 클리셰. 좋다.
푸른 드레스를 입은 채 무대로 올라와 피아니스트와 간단히 대화를 나누고, 관객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그 모든 게 너무나 여유로워 보였어. 그리고, 아름다웠겠지.
보라색 아이섀도우와 새빨간 립스틱, 자칫 촌스럽고 이상해 보이는 조합인데 원래 그러고 태어난 것처럼 어울려. 무대로 떨어지는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드레스는 햇볕 아래 눈밭처럼 빛났고 은은한 미소를 띤 얼굴과 하나로 땋아 내린 백금발은 그보다 더욱 환한 빛을 가졌어.
넋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자 픽 웃더니 말해.
“저기... 서버분?”
누구일까, 저 검은 벨벳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카리스마 있고 고혹적인 목소리가 지칭하는 행운의 주인공은? 내 이름도 불러줬으면... 아냐, 그러면 얼굴이 새빨개질 거야. 차라리 평생 모르는 게...
“빨간 머리 서버분... 이름표가... 안나?”
내 이름이잖아!?
“네, 네에? 저, 저요?!”
엘사가 약간 황당한 눈빛으로 웃고서 말을 잇겠지.
“저한테 반한 건 알겠는데, 아무래도 뒤쪽에서 손님이 부르시는 것 같아서요.”
“예?”
안나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자 짜증 가득한 손님의 얼굴이 보이겠지. 안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허둥지둥 영수증을 줄 거야.
“으아앗 죄송합니다...!” 하면서 구구절절 사과하자 손님이 탐탁잖은 얼굴로 주머니에서 팁을 꺼내서 주고 떠나겠지. 여기는 손님들 인심이 후해서 팁을 많이 주는 편인데, 그에 비해 적은 금액일 거야. 그래도 받아서 다행이다 생각한 안나는 정신 차리고 일한다. 물론 한쪽 귀는 무대로 향해있겠지.
“... 여기 매니저한테 이제 LOVE랑 Fly me to the moon 신청하는 손님은 내쫓으라고 해야겠어요. 집에 혼자 있으면 이명처럼 들린다니까요?”
손님들이 웃고, 엘사도 따라서 살짝 웃고는 물을 한 모금 마셔. 그 시간을 틈타서 무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앉은 손님이 엘사를 부르겠지.
“선물이에요!”
불쑥 내밀어지는 꽃다발. 꽃 사이에 앙증맞은 곰돌이 인형이 자리한, 누가 봐도 고백용 꽃다발이야. 엘사는 살짝 앞으로 걸어 나와 꽃다발을 받고 피아노 위에 올려두겠지. “올라프, 여기 둬도 괜찮지?” 하고 물으니 약간 부정교합인 남자가 물론이지. 하고 답해.
“여러분들은 레스토랑 싱어 업계를 잘 모르시겠지만, 나름 가수라고 이렇게 팬도 있답니다. 그렇죠, 제인? 늘 고마워요.”
아까 꽃다발을 준 여자가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려. 엘사가 지칭한 그 팬이었나 봐. 이름까지 알 정도면 꽤 오래 본 사이인가? 늘 고맙다니... 안나는 부러움이 한가득 밀려드는 걸 느끼겠지.
“잡담이 길었네요. 이제 노래 들려드릴게요. 이번에도 유명한 곡이니 걱정 마세요. 재즈의 여왕, 엘라 피츠제럴드의 Misty입니다.”
작은 박수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피아노 연주. 그리고 시선을 살짝 내리더니 선율과 박자에 녹아드는 엘사.
Look at me, I'm as helpless as a kitten up a tree....
허스키하지만 거칠지 않고 부드러운, 어딘가 간질간질한 목소리. 노래 제목처럼 안개가 낀 것 같은... 안나는 서빙에 집중하는 게 이리도 힘들 줄은 몰랐다고 생각하며 황홀한 귀와 참담한 심정으로 음식을 나르겠지. 뱃사람들이 홀렸던 목소리가 이런 거 아녔을까? 하고 추측하면서.
점점 바빠져서 노래를 훔쳐 듣지도 못할 정도가 되어 정신없이 일만 하다 교대 시간이 됐어.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무대를 좀 보다가 가려고 했는데, 공연 시간이 끝났다네. 안나는 직원실 의자에 털썩 앉아 허망함을 내비치겠지.
“오늘 일해보니 어때?”
어느샌가 레스토랑 매니저가 다가와 물었어. 오늘이 근무 첫날이니까 신입 관리 차원에서 온 거겠지. 안나는 보타이를 목에서 풀어내며 답했어.
“바쁘긴 했지만,”
“그래도 엘사가 있어서 다행이지. 최소한 귀는 즐겁잖아? 아, 아까 실수한 건 신경 쓰지 마. 다들 첫날에는 엘사한테 반해서 정신이 없거든.”
말 끊고 자기 말만 하는 매니저 때문에 안나 눈에 생기가 사라졌을 거야 ㅋㅋㅋ 그것도 하필이면 너만 엘사한테 반한 거 아니다- 같은 소리를 해서 더 싫었지. 아냐, 나는 다르다고! ㅂㄷㅂㄷ
“하지만 내일부터는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해야 해. 알지?”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말고, 잘해야지. 아무튼 그래, 오늘 수고했어.”
그리고 자리를 뜨는 저 인간의 왁스 먹은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었지만, 안나는 참았어. 휴, 오늘의 착한 일 하나. 속으로 자신을 칭찬한 안나가 마저 옷을 갈아입고 코트를 여몄어. 요즘은 정말 너무 춥다니까. 귀까지 덮어주는 모자를 쓰고 직원용 출입구로 나가겠지.
골목 안이라 아무래도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많아. 대부분 직원들이긴 했지만. 담배를 싫어하는 안나는 흡! 숨을 참은 다음 최대한 빨리 지나가려 하겠지.
“퇴근해요?”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저를 잡기 전까진 말야. 안나는 고개를 돌렸고, 그 자리엔 담배를 손에 끼운 엘사가 서 있겠지.
“앗, 네! 아까 퇴근하신 거 아니었어요? 아, 그건 그렇고, 노래 정말 잘 들었어요. 너무너무... 잘 부르세요, 정말.”
“고마워요. 돈 벌 정도는 되는 게 다행이죠. 제인이랑, 아, 제 팬이거든요. 아무튼 얘기 잠시 하느라 지금까지 남아있었어요.”
“저, 저도 팬이에요!”
“오늘 처음 본 거 아닌가?”
어딘가 모르게 가까워보이는 사이가 부러워서 무리수를 던졌는데 엘사가 그걸 간파함. 담배를 빨아들여서 순간적으로 볼이 살짝 패였다가 돌아오는 표정을 바라보다가, 안나는 딱히 담배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지 않는단 사실을 깨달음. 냄새 안 나는 담배도 있나? 하고 생각했지만 뭐 당연히 그런 건 아니었지.
“첫눈에 반했거든요!”
엘사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입에서 연기가 흩어져 나와.
“그래, 그럼 앞으로도 팬 해줘요. 안나. 이름 맞죠?”
“어, 엇, 맞아요. 어떻게 기억을...”
“내 동생 이름이랑 같아서요. 얼굴도 좀 닮았고.”
헉, 운명인가?! 속으로 호들갑을 떤 안나가 겉으로는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지.
“하긴, 이름이 쉽기도 하죠?”
“그것도 그렇구요.”
어느새 담배를 다 피운 건지 주머니에서 작은 틴케이스 같은 걸 꺼내더니 비벼 끄는 엘사. 안나가 담배 싫어했던 이유 중 하나는 담배 아무데나 버리는 흡연자들 탓도 있었기에 좀 달리 보이겠지.
“담배 싫어하죠?”
케이스를 도로 넣은 엘사가 말했어. 안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선 어떻게 알았냐고 하겠지. 별로 티 안 냈다고 생각했거든.
“방금 표정이 그래서. 근데 왜 말 안 했어요? 싫어하는 줄 알았으면 껐을 텐데. 늦게 눈치채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는 그냥 엘사 씨랑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서 그냥 있었어요.”
“나 되게 좋아하나 보다.”
“네. 아까 그랬잖아요, 첫눈에 반했다고.”
엘사가 계속 장난처럼 말하길래 안나는 이번엔 아주 꾹꾹 눌러 발음했겠지. 엘사는 잠깐 멈칫하더니 도로 심드렁한 반응이야. 그래요. 하고 고개 끄덕끄덕, 그게 끝이었거든.
아까 매니저가 한 말이 떠올라. 다들 첫날에는 엘사한테 반해서 정신 못 차린다고. 정말 모든 직원들이 이랬던 걸까? 엘사는 이렇게 말을 걸어주고? 왠지 모르게 섭섭해. 그럴 관계가 아니란 건 알지만 그냥 마음이 그래.
“그런데 어쩌다 일하게 된 거예요?”
“저는 배우거든요. 아직까진 오디션에 합격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여기에 계속 붙어있으려고요. 어쩌면 관계자들이 식사하러 올지도 모르잖아요?”
“몇 번 보긴 했는데, 그들은 식사 시간을 방해하려 드는 배우를 좋아하지 않던데요.”
“뭐, 사람이 자기 좋은 것만 하고 살 순 없잖아요? 인생의 쓴맛 좀 보라고 해요.”
안나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엘사가 킥킥대며 웃었어. 이전까지랑은 달리 정말 너무 웃겨서 웃는 것 같은 느낌. 안나는 그 웃음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만 같겠지.
“내일도 근무해요?”
“네. 내일도 나올 거고, 모레는 조금 늦게 출근이요. 아, 그럼 그날은 엘사를 못 보겠네요...”
안나의 표정이 시무룩. 엘사는 여전히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안나를 보고 있겠지
“앞으로 계속 볼 거잖아요, 그쵸?”
동생 닮았다더니 묘하게 애 취급하는 느낌이지만 일단은 신경 쓰지 않기로 한 안나야. 애 취급이고 뭐고 지금은 이렇게 신경 써주는 게 좋았거든. 안나는 엘사의 말 한마디에 금방 기운을 회복하곤 다시 쾌활하게 답하겠지.
“당연하죠!”
“그럼 내일 봐요. 나도 이제 가봐야 해
서.”
“앗, 네. 내일 봬요!”
그리곤 안나가 가야 할 길이랑 반대편으로 가는 엘사와, 멀어져가는 엘사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집으로 향하는 안나가 보고 싶다....